장편소설
2부
1
나는 부대에 출근하여 김석훈 일병이 지냈던 생활관의 명단을 확인했다. 김석훈이 떠난 뒤로 현재는 1중대에 두 명, 그리고 2, 3중대에 각각 한 명씩 하여 총 네 명이 하나의 생활관을 사용하고 있었다. 김석훈은 행정병이었던 데 반해 나머지는 모두 분대장이었다. 나는 그들과 김석훈 사이에 어떤 벽이 존재했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생활관 자리 배치도도 유념하여 확인했지만, 인원이 몇 명 되지 않는 생활관 배치도에서는 병사들 간에 관계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단념하고서 김석훈의 옆자리를 사용했던 병사인 A 병사부터 한 명씩 차례로 만나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는 1중대장에게 전화하여 양해를 구한 뒤 A를 1중대 강의실로 불러내었다. 휴일이 아닌 엄연한 업무 시간이었으므로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을 수 없었을뿐더러, 중대장실로 불러내는 것은 다소 권위적인 태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내가 텅 빈 강의실에 앉아 무엇을 어떻게 물어보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생각하고 있는데, A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그의 얼굴이 낯설어서 놀랐다. 마치 다른 대대의 병사를 보는 것 같았다. 분명 그를 몇 차례 본 적이 있겠지만 쉽게 기억에 남는 얼굴은 아닌 듯했다. 그의 전체적인 인상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준수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단정하지 않은 머리칼과 복장, 불량한 걸음걸이에, 경례하는 손짓과 목소리는 불손한 데가 있으며, 얼굴은 다소 음침한 데다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시선은 분명하지 않고 불안하게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으며, 발음 또한 어눌했다. 나는 아주 짧은 찰나, 그에게서 별 쓸모 있는 정보는 얻어내지 못할 거라고 낙담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최대한 숨기면서 그를 내 앞에 앉게 했다. 나는 그에게 요즘 생활관 분위기는 어떤지 물었다. 나 나름으로는 일방적 질문과 대답이 아닌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하려고 질문한 것이었는데, 그는 질문을 아주 불편하게 받았는지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헌병대 수사관이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수사는 종결됐고 장례도 마쳤어. 다만 나는 석훈이의 중대장으로서 몇 가지 알고 싶은 게 있고, 네가 같은 생활관 동기였으니까 혹시 너에게서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A는 예, 하고 작게 대답하며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석훈이랑은 잘 지냈니?”
“예. 그럭저럭. 동기니까…….”
나는 그에게 평소 김석훈과 개인 정비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했는지 물었다. 이를테면 같이 운동한다든지, 노래방에 간다든지, PX에 간다든지, 그런 것을 물어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걔야 행정병이니까 뭐 노래방에도 가고 생활관에서 영화도 보고 했지만, 저희 분대장들은 상병 되기 전까지는 그런 호사를 못 누립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곤, 그야 보직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는, 다소 김석훈의 편에 선 듯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A는 다소 흥분한 얼굴로, “저희처럼 밤까지 일하는 것도 아니고, 경계 근무도 안 서면서 맨날 힘들다는 듯한 얼굴로 있으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니까……”하고 말했다. 나는 침착함을 가장하고서 그에게서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죄송하다고 말한 뒤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의 닫힌 입을 보고 있자니 추궁한다고 해서 더 말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나로서도 그 이상 묻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잠시 시간을 두고서, 석훈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이유가 짐작되는 게 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이내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이어서 석훈이가 평소 나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는지도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조금도 틈을 두지 않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석훈이가 싫어한 사람은 없었나? 그게 나였대도 좋아.”
나는 과감하게 탐침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나는 그저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
나는 그에게서 희미한 떨림을 발견했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고, 그는 이번에도 잘 모르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나는 그를 돌려보내고 중대장실로 돌아갔다. 수영에게서는 이제 인천으로 출발할 예정이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어머님과 함께 밥을 먹고 얼마간 시간을 보낸 뒤, 내일이면 또다시 팔천 킬로미터를 날아갈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규칙을 익히고, 새로운 리듬을 잡고 새로운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애초에 그녀가 말했던 대로 헌병대의 수사 결과를 존중하고서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한 번 땅을 파기로 마음먹은 이상, 물이 나오든 안 나오든 최선의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마지막까지 땅을 파 보고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옷을 벗어던지고 떠나면 된다. 나는 그렇게 되뇌었다.
나는 점심을 먹은 뒤에 전과 같은 방식으로 양해를 구한 뒤 3중대 분대장인 B를 강의실로 불러냈다. 4중대와 같은 층을 사용하는 B는 얼굴이 익숙했다. 그러나 이렇게 찬찬히 뜯어보니 그의 얼굴에는 다소 반항적인 색채가 감돌았다. 그는 아마 자존심이 세고 감정 변화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빳빳하게 서 있는 그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다. 고개를 숙이며 내 앞에 앉는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그저 김석훈에 관해 내 개인적인 호기심이 남아 있어서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을 뿐 그의 자살에 의문을 품고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다행히 그는 조금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편안해진 듯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김석훈과의 관계에 관해 물었다.
“솔직히 별로 친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분대장이고 석훈이 형은 행정병이니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그리고 형이 워낙 특이하니까…….”
“특이하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물었다.
“비밀이 많고 제 이야기하는 것도 안 좋아하고, 통화할 때 엿들으려고 하면 불같이 화내곤 했습니다. 그러니 저희로서도 가까워질 수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나는 김석훈이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지 잠시 떠올려 보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석훈이는 제 친구에게 나에 관해 이야기했어. 그런데 나는 부대에 관한 이야기라면, 동기인 너희들에게 털어놓기가 더 적합한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거야.”
“석훈이 형이 중대장님 이야기를 한 적은 몇 번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친절하고 이성적인 분이라든지 그런.”
나는 씁쓸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불편하게 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없었냐고 물었지만, 그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하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를 돌려보냈다.
나는 병사들과의 면담에서 아직 유의미한 이야기를 건지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보지 못했던 김석훈의 이면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는 편안히 쉬는 공간인 생활관에서조차 어두웠으며 몇 안 되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고독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그의 모습, 즉 행정반에 앉아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는 그의 모습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그는 때로 농담할 줄 알았고, 때로 웃을 줄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내가 인간을 넓은 시각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대화의 일부에 내 생각을 더하여 수영에게 메시지로 보냈다. 그녀의 방문이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몸을 깨끗이 씻고, 수영이 만들어 놓은 볶음밥을 절반 덜어 데워 먹었다. 밥을 먹은 뒤에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어 마시며 《악령》을 읽었다. 소설은 분명 재미있었지만, 맥주는 맛이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합리화하고서 책을 챙겨 택시에 올라 K의 바로 향했다.
호프에는 예닐곱 명의 손님들이 두 테이블을 합쳐 놓고 모여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이 주변 어딘가에 있는 작은 공장의 직원들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K는 내게 손 인사를 한 뒤 생맥주를 내려주었다.
“어제 수영이 왔었어요.” 내가 말했다.
“정말?”
“네. 벌써 돌아갔지만요.”
K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왜 수영이 멜버른에서 논산까지 와야 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는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알게 된다고 해도, 그건 그대로 둔다. 그것을 괜히 만지작거리거나 어디에 옮겨 놓는 법도 없다. 그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나는 마카다미아를 씹으면서 생맥주를 마셨다. K는 손님들이 주문한 것을 만들어 냈고, 취한 손님들은 열띤 목소리로 현 정부를 비판했다. 아마 그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일일 것이다. 보리가 화폐 역할을 하던 시절이라고 해서 왜 민중의 불만이 없었겠나. 나는 그들의 대화는 신경 쓰지 않은 채 활자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어느덧 기존에 있던 손님들은 계산을 치르고 나갔고, 부부로 보이는 ―연인과 부부 사이에는 해협이 있고 해협을 건넜느냐 건너지 않았느냐는 위치적으로 완전히 구분된다― 커플이 와서 닭 날개와 함께 생맥주를 마셨다. 나는 생맥주를 두 잔 마시고 나서야 책을 덮었다. 두통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운, 피로를 동반한 희미한 어지러움이 기분 좋게 밀려왔다. 고전문학을 읽는 일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K는 밀린 일을 다 처리했는지 잠시 앉아 한숨을 돌리려는 듯했다.
“어제 맥주를 마시러 왔으면 좋았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조용한 공간에서 해야 하는 법이지.”
나는 마카다미아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와 같은 이야기는 분명 은밀한 공간에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 방향이 잡힌 건가?”
“네. 그런 셈이에요. 수영이 덕분에.”
“어떤 문제에서는 여자들의 혜안이 필요한 법이지. 꼭 성별을 나누자는 건 아니지만.”
“동의해요.”
나는 맥주를 한 잔 더 마실까, 고민했지만, 나로서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을 앞두고 있고, 그러한 일을 끝내기 전까지는 아주 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 생각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K에게 인사했다.
“내일이 마지막이에요.”
“마지막 인사는 마지막에.”
그는 그렇게 말한 뒤 내 어깻죽지를 가볍게 두 차례 두드렸다. 나는 그것이 그가 내게 보내는 응원처럼 느껴졌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가 어떤 종류의 문제인지 잘 알 수 없지만, 모쪼록 이겨내길 바라, 하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