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12)

장편소설

by 김기현

2


나는 이른 아침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회복이 필요한 신체가 온전히 회복했을 때, 무의식의 상태를 벗어나 의식의 상태로 서서히 미끄러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수하고 전동면도기로 수염을 꼼꼼하게 밀어냈다. 수면을 충분히 취했을 때는 커피 같은 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세수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은 아주 또렷해지고 명료해진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바깥을 달렸다. 유월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초여름의 아침은 ―다른 계절보다― 더욱 상쾌했다. 살갗에 닿는 공기는 적절한 습기를 머금고 있으며 체온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만 차갑고, 인간이 잠든 새 대기 중에 농밀하게 번진 풀냄새는 정신이 반짝 들 만큼 상쾌하다. 몇 모금 마셨을 뿐인데 몸이 가벼워지며 기분이 좋아진다. 겨울 아침에 맡을 수 있는 차분하고 무거우며 고독한 냄새와는 다르다. 물론 언어적으로 설명하기엔 여간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이곳 논산에서의 마지막 달리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며 다소 무리하여 일 킬로미터를 오 분 삼십 초에 달렸다. 그리고서도 점차 페이스를 높였다. 그에 따라 심박수가 올랐지만, 충분한 휴식을 취한 내 몸은 문제없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총 팔 킬로미터를 달렸다. 마지막 일 킬로미터는 사 분 삼십 초에 달릴 수 있었다. 나는 달리는 동안 예닐곱 명의 군인들을 마주쳤다. 그중 한 명은 여군이었다. 백육십 남짓 작은 키의 그녀는 머리를 야무지게 묶고 스포츠 헤어밴드를 끼고서 무척 진지한 태도로, 꽤 빠른 속도로 달리기에 임하고 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조금 어려 보였는데, 그녀에게 달린다는 행위는 내가 그것을 인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달림으로써 외력에 맞설 수 있는 에너지를 배양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물 오백 밀리리터가 담긴 페트병 하나를 모조리 마신 뒤, 수영이 어제 먹고 남은, 소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볶음밥을 데워서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는 비타민을 비롯한 영양제 몇 알을 습관적으로 먹고 몸을 깨끗이 씻었다. 나는 전투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그날은 군인으로서 마지막 출근이었다.

그날 오전에는 전역을 앞두고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 정신이 없었다. 인사과에는 전역 시 필요한 서류와 함께 여분의 전투복을 제출한 뒤 관사 퇴거와 관련하여 주의 사항을 안내받았다. 그간 작성했던 중대 인계 사항은 교육대장에게 제출했다. 교육대장은 타 중대장들을 동반하여 나를 중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어쩐지 불편하기만 한 식사 자리였다.

오후에는 김석훈의 또 다른 동기인 C를 중대장실로 불러냈다. 해당 중대의 강의실로 찾아가 자유로운 분위기를 형성하여 면담하려던 어제와 달리 권위를 앞세우려는 의도였다. A와 B는 분명 어제 다른 동기들에게 내가 자신들을 불러 면담했음을 말했을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C는 방어기제가 발동하여 쉽게 입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나는 오늘부로 군복을 벗는 힘없는 중대장이었다. 치사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균형이 맞춰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C가 들어왔을 때, 나는 에어컨을 켠 뒤에 보급병을 불러 C가 마실 얼음물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잠시 후 보급병이 얼음물을 가져와 C에게 건넸다. 보급병은 C보다 한참 선임이었기에, C는 매우 불편한 태도로 보급병에게, 그리고 나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나는 보급병이 나간 후 공기가 시원해지기를 기다렸다. 아직 매미가 울지 않는 초여름 특유의 적막 속에서 권태로운 기계음만이 실내를 돌아다녔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오늘부로 전역하게 되어 있고, 너희는 내일 아침 휴가를 나가지. 아마 석훈이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잊힐 거야. 물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나는 그전에 몇 가지 분명하게 해 두고 싶은 게 있고, 그렇기에 너를 부른 거야.”

그는 양손으로 생수를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내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아는 것도 모를 거라고 답할 거라면 지금 당장 나가도 좋아.”

나는 포커에서 원페어를 들고서 전 재산을 베팅하는 플레이어처럼 아무런 패도 쥐지 못한 채 기세를 높였다. 그는 분명 어쩔 줄 몰라하는 듯 보였다. 설사 그것이 표면적인 태도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유효한 것이었다.

“아는 건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석훈이가 정말 나 때문에 힘들어했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점들 때문이었는지 그것을 알고 싶어. 물론 너는 이러한 질문들을 헌병대 수사관에게서 수도 없이 받았겠지. 거기에 대해 함구한 것은 나로서는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인지도 몰라. 그러나 적어도 나는 진실을 알아야 해.”

C는 언 생수를 양손으로 꽉 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는……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너도 석훈이와 대화를 잘 나누지 않았다, 이건가?”

“석훈이 형은 누구와도 대화를 잘 나누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주말에 쉴 때 영화를 보거나 해도, 같이 보는 법이 없었습니다. 가끔 수첩을 꺼내어 일기 같은 걸 쓰곤 했는데, 그때조차도 얼굴이 어두워서 누구도 말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석훈이의 유족들은 석훈이의 물품에 석훈이가 남긴 일기나 메모 같은 건 없었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때 C의 얼굴이 창백해졌음을 눈치챘다.

“그날 석훈이의 관물대에 손을 댄 사람이 있나?”

그는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으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의 손에 있던 물병이 바닥에 툭, 떨어져 굴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는 이미 신경질적으로 몸이 떨고 있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중대장실을 빠져나가 강의실을 통하여 실외로 나갔다. 그는 시야가 트인 바깥 계단에 앉아 몇 분이나 숨을 몰아쉰 뒤에 진정을 되찾았다. 나는 그날 D와도 면담할 생각이었으나, 아무리 중대장이라고 해도 전역을 코 앞에 둔 인간이 부대를 뒤집어 놓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앞서 다짐했듯이 우물을 팔 때는 이곳에는 물이 나오지 않구나, 라는 확신이라도 얻고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나는 곧 소실될 나의 권한으로 D의 개인정보를 확인해, 그의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그가 인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전 11화심해(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