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지난 일주일에 관해 천천히 설명해 줄 수 있겠어?”
나는 “그럼”하고 답했다. 바깥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타이어가 노면을 미끄러지는 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무한히 반복되는 빗소리뿐이었다. 나는 잠시 빗소리에 집중한 뒤 한숨을 내쉬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려고 캔을 잡았지만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날 아침을 떠올렸다.
“지난 목요일, 병사가 목을 매 자살했어. 내가 출근했을 때 간호장교가 의무병을 대동하여 막 부대로 온 참이었고, 우리가 병사를 찾았을 때는 이미 당직사관이 병사의 흉부를 압박하고 있었어. 간호장교는 당직사관보다 능숙한 자세로 병사에게 몇 차례 흉부 압박과 인공호흡을 시도했으나,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 우리는 간호장교의 지시 아래 그를 들것으로 옮겼고, 병원으로 이송했어. 그리고 결국 죽었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유족은 중대장인 내가 병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게 아니냐고 항의했어. 통화로 말했듯이, 고인의 친구 측 증언에 의한 거였지. 나는 부대 밖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헌병대 수사 장교는 우리 중대의 모든 병사와, 죽은 병사의 동기들을 면담했어. 물론 면담은 이미 이루어졌던 것이지만, 새로운 증언이 나온 만큼 다른 가능성을 가지고 조금 더 심층적으로 면담한 게 아닐까, 싶어. 그러나 수사 결과 부대 내 괴롭힘이나 부당한 권한 행사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어. 그건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미로에 던져진 기분이야.”
그녀는 신중한 태도로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선 자신의 내부에서 그 이야기를 차곡차곡 정리한 뒤에, 무언가 미심쩍은 것을 발견했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만약 병사가 하루 늦게 자살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글쎄. 그랬다면 나는 이미 전역했을 테고, 조금 더 곤란한 입장에 직면했을 거야. 현재의 나는 전역을 앞둔 군인이기는 해도, 어쨌든 신분은 여전히 군인이고, 어디 집단에서나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거야.”
“그게 우연일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춥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서늘한 기운이 조금씩 실내에 쌓이는 듯하여 나는 일어나 창문을 닫고 다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수증기가 응결되어 달라붙은 맥주캔을 마른행주로 닦아내었다. 나는 맨 정신으로 있기 위해서 맥주는 마시지 않았다. 그저 새로 꺼낸 생수를 한 모금 마셨을 뿐이었다.
“있지, 난 널 믿어. 우리는 일생의 절반을 함께 해 왔으니까.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너보다 너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어.”
“아마 그럴 거야.”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물론 너는 어떤 경우에는 너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말지만, 너는 근본적으로 남을 곤란하게 하는 인간은 아니야. 그리고 그러한 삶의 태도는 군인으로서도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해. 고인이 정말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었다면, 즉 병사가 너 때문에 힘들어한 게 사실이라면, 목을 매기 전에 그 사실을 한 번 알려보는 방법도 있었을 거야. 너한테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우면 상급 부대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병사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어. 아무리 생각해도 목을 매는 일보단 그 편이 더 간단했을 텐데 말이야. 게다가 병사는 제 목을 맴으로써 진위를 다툴 가능성을 없애버렸어.”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맥주캔에는 금세 새로운 물방울이 응결되었다. 그것들은 곧 떨어질 듯 위태로웠다. 수영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시선을 떨군 채 무언가를 생각한 뒤에, 곧 고개를 들어 아주 선명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헌병대의 수사 결과를 믿고 잊을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나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정말 그 병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건 아닐까, 하고 나조차도 의심할까, 봐. 그게 두려워. 그렇게 되는 일만큼은 막고 싶어.”
수영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떠날 수 없다는 거지?”
“어느 정도는.”
“하지만 병사는 이미 죽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맥주캔에 붙은 물방울이 흘러 떨어졌다.
“헌병대 수사관들이 죽은 병사의 생활관 동기들을 면담했어. 만약 죽은 병사가 평소 무언가, 예컨대 나에 대해 말한 게 있다면 분명 헌병대 수사관들의 총구는 나를 향했을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사건은 그냥 종결되었어. 그리고 시신은 화장되었지. 나는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해.”
수영은 허리를 곧게 펴고 차분한 태도로 호흡을 골랐다. 빗방울이 얇아진 것인지 비가 그친 것처럼 아주 조용한 적막이 찾아왔다.
“그 병사들을 네가 직접 면담해 보는 건 어떨까?” 그녀가 말했다.
“내가? 하지만 명분이 없는걸. 다른 중대의 병사를 일과 상관없이 임의로 데려가는 건 중대장으로서도 조심스러운 일이야.”
“그렇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생활관을 썼던 동기라면 그 병사가 생전에 너에 대해 이야기한 무언가를 듣지 않았겠어? 그것이 하나의 조각에 불과할지라도 말이야. 그들이 수사관에게 말하지 않은 건, 자신이 가진 정보가 너무나 불분명해서 그럴지도 몰라. 자신이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몰라 두려워했을지도.”
나는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아무런 소득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곳에 진실이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예컨대 땅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땅은 파야 하는 것이다.
수영과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본 채 빗소리를 들었다. 창문을 열었음에도 비는 소리랄 것은 거의 내지 않고 아주 차분하게 내렸다. 마음속에 부유하는 잡념들을 가라앉혀 주는 차분함이었다.
“그날은 비가 왔어. 엄마와 아빠는 지인 모임에 나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는데, 오빠가 나를 방으로 불렀어. 방으로 들어가니, 오빠는 내게 자위를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어. 나는 중학교 일 학년이었어. 남자의 자위행위 같은 건 잘 알지도 못했어. 그날 나는 거절할 수도 있었어. 그러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바깥에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어. 나는 일을 마치고 내 방으로 돌아와,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절감했어. 그러한 일이 몇 차례 반복된 뒤 그 사실을 엄마에게 털어놓았을 때, 엄마는 앞으로 오빠가 불러도 방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주의를 줄 뿐이었어. 나는 엄마와 틀어졌고, 그런 엄마는 결국 아빠와도 틀어졌어. 집안은 무척이나 냉랭하고 쓸쓸했지. 그런 상황에서 오빠는 죄책감에 시달렸어. 가족들이 함께 밥을 먹을 때면 부끄러움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밥을 먹던 오빠의 얼굴은, 죽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해 보였어.”
수영의 오빠는 성인이 되던 해 목을 매 자살했다. ‘이것이 가장 훌륭한 출구다.’라는 단 한 줄짜리 의미심장한 유서만 남긴 채. 수영은 매달린 오빠를 본 최초의 목격자였다. 그녀는 열일곱 살이었다.
11
수영은 나의 목에 제 얼굴을 묻었다. 땀으로 젖은 그녀의 머리칼에서는 아주 익숙한 냄새가 났다. 그것은 늘 내 마음을 안온하게, 육신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아카시아꽃에는 아카시아꽃의 냄새가 있고, 벚꽃에는 벚꽃 냄새가 있듯이, 사람도 제각각 고유의 향을 가지고 있다. 그 개성이 분명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그것은 DNA처럼 남들과 구분되는 그 무엇임이 분명하다. 인간은 살면서 몇 가지의 냄새를 특별하게 기억하게 된다. 나는 공원을 걷다가 문득 바람이 가져온 어떤 향수의 냄새에 멈춰 서곤 한다. 내 몸이 그 향수를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곧 그것이 아주 오래전, 나의 아내가 나의 여자친구이던 시절 사용했던 향수임을 알게 된다. 냄새를 기억하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수영은 멜버른에서의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멜버른이라는 도시의 단점이라고는 물가가 비싸다는 점뿐이었는데, 한국에서보다 급여가 높아서 유일한 단점마저 상쇄되었다. 그녀는 걸어서 출퇴근하며 ―집에서 도보로 십오 분 걸리는 거리에 병원이 있었다― 교대근무를 했고, 일주일에 서너 차례는 공원을 달렸다. 하루에 두 끼를 먹었으며, 병원에서 한 끼를 먹으면, 나머지는 퇴근하는 길 샌드위치나 피자를 포장해서 먹었다. 휴일에는 마트에 가서 신선한 고기나 생선, 그리고 채소를 사서 프라이팬에 구워 먹었다.
수영은 집을 구한 뒤로 침대, 옷장, 협탁, 책장과 신발장 등을 차근차근 구매했다. 책장에는 그녀가 자기 전에 읽으려고 산 영문 소설과 희곡이 몇 권 꽂혀 있었다. 그녀가 멜버른으로 먼저 이사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멜버른이 어떤 도시인지 물었다. 그녀는, “멜버른은 여럿의 인종들이 잘 화합해 있는 도시야. 피부가 다소 검은 원주민부터 유럽에서 넘어온 백인, 아랍인, 폴리네시아인,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동양인들까지 아주 다양해. 생김새는 모두 다양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의 언어를 사용해. 말하자면 그게 이 땅의 규칙이지. 여기에는 인종 차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여.”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만으로는 도시가 어떤 모습일지 나로서는 잘 상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음, 하고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아직은 나도 이 도시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도시에는 정말 러너들이 많아. 어쩌면 이 땅 깊은 곳에 러너를 끌어들이는 어떤 자력 같은 것이 존재하는지도 몰라. 아침,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이 도시의 공원에는 러너들이 넘쳐나. 그들은 보통은 홀로, 때로는 여럿이서 무리 지어 달려. 마치 좋은 대학교나 회사에 합격하려면 달리기 기록이 좋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그녀는 구월이 되면 개최하는 마라톤에 하프 부문으로 참여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나는 그녀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멜버른이라는 도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인간만이 도시를 바꾸는 게 아니라, 도시 또한 인간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진리를 아주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인간이 많이 달린다는 것은 분명히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곳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명력은 물과 햇빛, 흙, 산소, 그 밖의 여러 매개체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된다. 나는 어느새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