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15)

장편소설

by 김기현

“결혼하고 나서 나는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했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도시락을 챙겨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고, 학생들을 가르친 후에 저녁 일곱 시쯤이면 집에 돌아와 한 끼를 더 먹고, 다음 끼니를 먹기 전까지는 책을 읽거나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냈어.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미 보디빌딩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어. 운동해서 내 몸을 바꿔내는 행위는 좋았지만, 보디빌더들 특유의 자만심과 선민의식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어. 언젠가부터는 내 커다란 근육이 부끄럽게 느껴져 큰 옷을 입어 몸을 감출 정도였지. 무리할 정도로 키운 근육은 남을 겁박하기 위해 야쿠자 문신을 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된 거야. 어떡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 다른 직업을 찾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운동을 통해서 버는 돈이 많았기에 그걸 포기하지는 못했으니까. 그러한 고민을 마침내 아내에게 말했을 때, 아내는 아주 간단하게 답했어. 권태기가 온 게 아니냐고, 잠시 쉬면 괜찮지 않겠냐고 하더군. 나는 그녀를 경멸하는 눈으로 보았어. 그리고 내가 겪은 환멸은 권태기 따위에 비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경박하게 생각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꾸짖었지. 나는 그 이후로 점점 아내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어. 또 나 자신을 가둔 채 책에 파묻혀 살았지. 그때는 아내도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기에 아내는 아내대로 시간을 보냈어. 처음에는 아내도 그게 마음 편한 듯 보이더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논문을 쓰고 퇴고하는 데 쏟아부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아내를 밉게 여기기 시작한 거야. 나중에는 아내가 먼저 나에게 같이 공원을 걷지 않겠냐고 물어봤을 때도 나는 싫다고 퉁명스럽게 답했지. 당시 우리는 정말 최악이었어. 어떤 때는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며칠이 흘러가기도 했으니까. 도저히 정상적인 부부라고 보기는 어려웠지. 나는 서가가 있는 방의 방문을 닫고 자정이 되기 전까지 책을 읽다, 자정이 되면 침대에 누웠고, 아내는 안방에서 논문을 퇴고하다, 내가 누운 뒤에는 서가로 갔어. 그녀는 두 시나 되어야 잠에 드는 듯했어. 그런 상황에서 부부간에 마땅히 존재해야 할 대화는 텅 비어 있었지. 일어나는 시간은 비슷했지만, 아침에는 더욱이 서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어. 차라리 아내가 박사 과정에 뛰어들지 않고, 적당한 회사에 입사해서 생활했더라면, 나는 우리의 삶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 물론 아내의 탓이라는 게 아니야. 이 모든 건 사람에게 쉽게 실망하고선 혼자가 되어버리는 기질을 타고난 나의 탓이지. 그런 생활이 지긋지긋하게 반복되었어. 아내는 그사이 박사 과정을 마쳤고, 우리의 관계를 새로운 방면으로 돌려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아내는 내게, 이제 아이를 가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 나는 동의할 수 없었어. 나는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를 등지고 사는 사람인데, 새로 태어난 생명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 나는 핏줄이나 혈육 따위에 의미를 두는 인간이 아니었어. 그러나 어쨌든 비교적 시간 여유가 생긴 아내는 나와 화해하려고 노력했어. 그러나 나는 그때쯤 이미 아내를 미워하고 있지 않았어. 나와 아내와의 관계가 새로운 방면으로 진전되지 못한 건, 그건 내가 아내에 대한 기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아내는 그걸 몰랐지. 아마 아내는 내가 여전히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나는 미치도록 혼자가 되고 싶었어. 물론 세상은 혼자서 살 수가 없어. 하다못해 생수 한 병을 마시려고 해도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생수가 페트병에 담겨 마트에 들어오는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 나도 우리의 관계를 정상적인 모습으로 바꾸려고 노력했고, 우리는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 하지만 내게 우리의 대화는 표적에 도달하지 못한 채 하릴없어 떨어지고 마는 화살처럼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졌어. 실제로 그랬던 건 아닐 거야. 아마 나는 당시 신경증을 앓았던 게 아닐까? 물론 신경증 따위에 나의 과오를 모두 맡기려는 건 아니야. 나는 분명 아내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해.”

K는 숨이 잘 안 쉬어지는 폐병 환자처럼 몇 차례 숨을 크게 내쉬고 들이마셨다.

“어느 날 아내는 내게 임신했음을 밝혔어. 언제 알았냐고 물어보니 벌써 한 달도 넘었다더군. 나는 무척 화가 났어.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느냐고, 나를 속인 거냐며 아내를 몰아세웠지. 아내는 무척이나 큰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져서 돌아섰어. 물론 아내를 임신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나야. 그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아내를 탓할 수 있었겠어? 나는 그토록 무렴한 인간이었던 거야. 그 뒤로 아내는 내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어. 안방에도 오지 않았어. 서가가 있는 방에서 이불을 깔고 잔 거야. 나는 아내가 무척 지혜롭고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니 며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하면 된다, 그뿐이다, 하고 생각한 거야.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아내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어.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연구소에 출근했지. 그러나 아침이 되었든, 저녁이 되었든 우리가 한집에 있는 동안, 그녀는 절대 내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어. 아내는 내가 물러서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어. 나도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야. 결혼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내를 임신시킨 남편으로서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을 반대하는 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일이지. 그러나 그때의 나는 지극히 염세적이어서 모든 인간을 경멸하고 세상을 혐오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내가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나는 어쩌면 내가 아이를 증오하게 되지는 않을지, 그게 두려웠어. 연구소에서 전화를 받은 건 그해 전국체전을 마치고 이틀이 지났을 때였어. 서늘한 기운과 함께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시월이었지. 연구소의 한 직원은 아내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출근하지 않았다고, 전화도 받지 않는데 무슨 일이 있냐고 묻더군. 나는 확인해 보고 회신하겠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어. 그리고 나는 스스로 아내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떠올렸지. 그러나 정확히 떠올릴 수 없었어. 나는 시합을 앞두고 정신이 없었으니까. 어제는 보지 못했으나, 사나흘 전에는 분명히 봤던 것 같다, 그렇게 두루뭉술하게만 기억했지. 나는 현관에 가서 그녀의 신발을 확인했어.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가 자주 신는 운동화와 슬리퍼가 전혀 보이지 않았어. 신발장을 열어 보니 그 안에 모두 들어있더군. 하지만 나는 곧 단 하나의 신발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내가 연애할 때 선물했던 연분홍색의 구두인데, 그녀가 참 아끼던 것이었거든. 나는 서늘했어. 이미 무언가가 뒤틀렸으며, 되돌리기에는 늦었다는 확신이 전기가 지나듯 내 몸을 지났어. 나는 서가가 있는 방문을 열었어. 그곳에 아내는 제가 아끼던 구두를 신은 채 하늘을 보고 이불 위에 반듯이 누워 있었고, 이불은 피로 젖어 굳어 있었어.

초침마저 멈추어 버린 것 같은 적막이 우리 앞에 놓였다. 재즈의 피아노 선율만이 시간이 멈추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나에게 일러주었다.

“나는 살인이나 다름없는 잘못을 저질렀어. 아니, 살인을 저질렀지. 법에만 저촉되지 않았을 뿐 도덕적으로는 분명한 살인이지, 관념적 살인이야. 나는 소중한 생명을, 그것도 둘씩이나 이 세상에서 지워버렸어.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는,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는 결코 알 수 없는 법이야. 어떤 때는 그런 것쯤이야 없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나는 나의 육체와 정신을 끊임없이 향상해 줄 운동과 독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분명 어느 시기에는 그것들이 정말 유효했는지 몰라. 그러나 결국 그것들은 내게 독이 된 셈이야. 나는 그날로 운동과 독서를 그만두었어.”

5

우리는 그 뒤로도 맥주를 석 잔쯤 더 마셨다. K는 내게 호주에서의 계획을 물어보았고, 나는 나 나름대로 생각해 두었던 것을 요령 있게 이야기했다. K는, 언젠가 내게 호주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생맥주를 내리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었다. “호주에도 맥주의 맛을 예민하게 따지는 너 같은 인간들이 분명 얼마쯤 있을 테니까”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정말 그러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도, 정작 작별 인사를 나눌 때는 포옹으로 그쳤다. 또 보자는, 그런 흔한 말도 할 수 없는 차가운 작별이었다. K는 내게 종이로 된 쇼핑백을 건넸다. 그 안에는 CD 플레이어와 함께 CD가 들어 있었다. “호주에서 들으라고”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양손을 모아 합장하고서 종이 달린 문을 열었다. 짤랑, 하는 종소리가 지하에 공명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랐다. 풀벌레 소리가 귀를 찔렀다. 풀벌레들이 내게 괜찮다고, 누구에게나 작별은 있는 것이라고 내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나 작별은 있는 것이다. 풀벌레들에게도, 나에게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다소간 어지러움이 일었다. 숙취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어제 들은 K의 이야기가, 내가 잠자는 동안에도 떠나가지 못하고 머릿속에 계속 맴돌며 내 생각을 어지럽힌 것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K가 선물해 준 CD 플레이어에 《Late night jazz》CD 1을 넣었다. 제1번 트랙은 ‘Round midnight’이란 곡으로 색소폰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가 떠오르는 음악이었다. 고독한 남자 ―이 남자는 필연 드 니로여야 한다― 가 바에서 홀로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바텐더는 그 앞에서 권태감이 짙은 얼굴로 무심하게 다른 손님의 술을 따르고 있다. 곧 바의 앞에서 택시가 멈추고 택시에서 내린 남자가 들어와 고독한 남자의 옆에 앉는다. 그들은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무언가를 주고받는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둘 중 한 명이 죽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두 명이 모두 죽을지도. 나는 1번 트랙이 끝날 때까지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다가 1번 트랙이 끝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몸은 무겁지 않았다. 그렇지만 머릿속에는 여전히 K가 해 주었던 이야기가 돌아다녔다. 나는 일부러 생각을 내쫓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을 수 없듯,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었다.

나는 몸을 깨끗이 씻고 색이 많이 바랜 청바지 위에 검은색 카라티를 입은 뒤 운동화를 신었다. 끈으로 묶은 책은 트렁크에 싣고, 캐리어 두 개는 뒷좌석에, 배낭은 조수석에 실었다. 짐이 꽤 무거운지 타이어가 꿀렁대며 한숨을 내뱉었다. 침대 매트리스는 미리 사둔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내놓고 마지막으로 나온 쓰레기를 한데 모아 버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다른 인수인계 절차 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딱히 인사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종종 목례 정도는 하고 지낸 이웃이 있지만, 그뿐이었다. 목소리도 기억할 수 없는 이웃일 뿐이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땅콩 크림이 담뿍 들어간 빵과 블랙커피를 한 잔 사서 차에 앉아 먹으며 시동을 걸었다. 노래는 듣지 않았다. K가 내게 해 주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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