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바다가 끝난 시대, 글로벌 통행세
아침 8시 30분. 나는 어김없이 병원 문을 열고 고요함 속에서 경제 뉴스와 물류 지표를 체크한다. 이란 전쟁의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는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병원에서 파는 펫용품의 수입 원가 장부만 슬쩍 들여다봐도 상황은 심상치 않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물건들의 해상 운임비와 적하보험료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사람들은 마트에 가서 대파 값이나 계란 값이 오르면 그저 "정부가 물가 관리를 못 한다"며 정치인들을 향해 삿대질을 한다.
하지만 매트릭스 밖의 현실은 훨씬 더 잔혹하고 구조적이다. 지금 당신의 밥상 물가와 생활비를 박살 내고 있는 진짜 범인은 무능한 정치인이 아니다. 지난 70년간 인류가 공짜로 누렸던 '마찰 없는 바다(Frictionless Sea)'가 끝이 나고, 길목을 쥐고 삥을 뜯는 '바다의 깡패들'이 화려하게 부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된 밀가루, 원유, 값싼 공산품이 바다를 통해 아무런 저항 없이 내 집 앞까지 배달되는 것을 보편적 권리라 착각하며 살았다. 사람들은 국제해양법(UNCLOS)이 외국 선박의 '통과통항권'을 보장하기 때문에 바다가 안전하다고 믿는다.
순진한 소리다. 그 법적 질서는 본질적으로 '미국 해군'이라는 압도적인 무력이 바다를 꽉 쥐고 있었기에 실질적으로 유지되었던 것뿐이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고 힘의 공백이 발생한 지금, 서류 조각에 불과한 국제법적 규범은 무너지고 오직 지정학적 힘의 논리에 의해 바다의 규칙이 재편되고 있다. 경찰이 사라진 골목길에는 필연적으로 깡패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지정학적 초크포인트(Chokepoint)를 쥐고 있는 국가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피터 자이한(Peter Zeihan) 같은 전략가들이 경고한 이른바 '국가 주도 해적질(State Piracy)'의 화려한 부활이다.
지리적 요충지의 무기화: 역사적으로 덴마크는 400년 넘게 외레순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사운드 통행세'를 뜯어내며 국가 수입을 충당했다. 이 무식한 모델이 21세기에 다시 돌아왔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통행료를 2022년 이후 지속적으로 인상해, 2025년 중반에는 톤당 5.83달러까지 멱살을 잡고 끌어올렸다. 지리적 독점력을 완벽하게 무기화한 것이다.
해양 안보세의 강제: 세계 해상 무역의 25%가 지나는 아시아의 대동맥, 말라카 해협도 마찬가지다. 연안국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그동안 치안 유지 비용을 핑계로 '비용 분담'을 벼르고 있었다. 미 해군의 보호막이 사라진 지금, 이들은 상선들에게 강제적인 '해양 안보세(Maritime Security Tax)'를 부과할 완벽한 명분을 얻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쥐고 흔드는 것은 이 거대한 삥 뜯기의 서막에 불과하다.
이 바다의 깡패들이 요구하는 '통행세'는 단순히 해운사 회장님들의 골칫거리로 끝나지 않는다. 그 비용은 완벽하게 계산되어 이제 막 돌이 지난 내 아이가 먹을 이유식과 당신의 식탁 위 반찬값에 정확히 전가된다.
상선들은 깡패들에게 통행세를 내거나, 전쟁 위험 보험료를 천문학적으로 지불하거나, 값비싼 무장 용병(PMC)을 배에 태워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우회하며 막대한 기름값과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결국 국가의 운명은 극단적으로 양극화될 것이다. 이 모든 해상 물류비는 '보이지 않는 글로벌 통행세'가 되어 원자재와 소비재 가격에 얹힌다. 금리가 오르고 수요가 줄어들면 잡히는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물건이 이동하는 '물리적 비용' 자체가 영구적으로 상승하는, 끔찍한 구조적 초인플레이션(Structural Hyperinflation)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바다의 통행세가 부활한 이 각자도생의 시대에 환율은 튀고 원가가 폭등해 적자가 나는데도 "손님 떨어질까 무섭다"며 가격표를 바꾸지 못하고 제 살을 파먹는다.
하지만 나는 징징거릴 시간에 내 자본의 요새를 더 높이 쌓는다.
내가 덩치 큰 24시간 대형 병원의 껍데기를 버리고, 고정비를 극한으로 덜어낸 1인 병원 체제를 구축한 것은 이 구조적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병원에서 창출된 압도적인 잉여 현금을 끊임없이 미국 우량 기업들의 집합체인 VOO(S&P 500)와 QQQM(나스닥 100) ETF에 밀어 넣는다.
왜 하필 미국 주식이냐고? 미국이 세계의 바다를 버리고 고립주의로 간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전 세계 경제가 어떻게 박살 나든 미국 본토만큼은 에너지와 식량 자급자족을 통해 가장 완벽하게 살아남을 '최후의 요새'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바다에 깡패가 들끓어도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생태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단기적인 주가 폭락이나 경기 침체는 나도 예측할 수 없고, 당장 내일의 계좌 잔고가 파랗게 질릴 수도 있다. 하지만 5년, 10년 뒤 이 거대한 지정학적 빙하기가 끝났을 때, 미국의 시스템에 올라타 꾸준히 지분을 모아간 자들은 반드시 웃고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바다의 시대는 끝이 날 수도 있다.
세상을 욕할 에너지가 있다면 당장 당신의 비즈니스 고정비를 깎아내고, 무너지는 화폐 가치를 방어할 '가장 안전한 제국의 지분'을 사들여라. 다가오는 구조적 인플레이션의 해일 앞에서, 징징대는 자에게 던져줄 구명조끼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