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책이야기 : 서평1- <기억전쟁>, 임지현, 휴머니스트, 2019.
>>박혜정(경기 정평중)
기억전쟁(임지현)을 읽고 있을 때 우리 집 중2 청소년이 마침 질문을 했다.
“일베처럼 문제가 많은 사이트는 국가가 불법이라 정해서 폐쇄 하는 것도 방법 아니에요?”
그 질문에 나는, 그 무렵 이 책에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데이비드 어빙과 데버라 립스탯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립스탯은 자신의 책(<홀로코스트 부정하기>,1993)에서 어빙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로 규정했다. 그러자 어빙은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므로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따라서 자신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로 규정하는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을 하며 립스탯을 고소했다. 그 과정에서 어빙은 세계 곳곳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부정을 범죄로 규정하는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미 1989년 그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였고, 2005년 오스트리아 여행 중 그는 경찰에게 체포되게 된다.
그런데 막상 데이비드 어빙이 체포되자, 미국의 신망 있는 역사학자들이 어빙의 석방을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린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학문의 장에서 학문적으로 걸러 소멸해야지 법으로 제재한다면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빙에게 고소당해 4년 정도의 시간 동안 재판을 진행해야 했던(1996.9.~2000.1. 총 32번의 공판, 판결문만 334페이지) 립스탯까지 연판장에 서명을 했다는 것. 이 대인배는 무엇?
이 차이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직접적 경험을 바탕으로 홀로코스트 부정을 형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인 유럽 대륙과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미국·영국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한다.
일베에 대해서도 유럽 대륙식 접근과 미국·영국식 접근이 가능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미국·영국식 입장에 동의한다. 국가가 법으로 그런 조직을 불법이라고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방법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국가에게 그런 권한이 주어지는 순간 불온한 단체의 기준은 무엇이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범위는 또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란이 생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그 기준이 바뀔 위험도 있다, “건강한 시민 사회에서 스스로 걸러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인 것 같다.”는 다소 장황해져 버린 답변.
이야기를 다 들은 중2 청소년은, 엄마의 화법이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를 쓴, 이정모 관장 같다고 말했다. 사소한 질문에 거창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활용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점이 비슷하다고 칭찬인지, 까는 것인지 모르겠는 논평을 남겼다. (뭐, 저도 역사는 어렵습니다만..)
귄터 그라스, 오에 겐지부로, 체스와프 미워시, 얀 그로스, 쿠르트 발트하임, 로젠버그 부부, 독일 야전헌병대, 소련 형벌부대, 슈타지 등등 세상 흥미진진한 인물들과 내가 몰랐던 지식들을 접하며 재밌기도 하고 나의 무지에 당황하기도 하며 그렇게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또 내 마음을 덜컹덜컹 흔들어댄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치 치안 경찰 소속 ‘101 예비경찰대대’의 소령, 빌헬름 트라프. 평소 대원들에게 불리던 별명은 ‘파파’
1942년 7월 13일. 폴란드 바르샤바 남동쪽의 한적한 시골마을, 유제푸프에 도착한 500여명의 대원들에게 그는 주저주저하면서 명령을 내린다.
“본인도 영 마음에 안드나,
‘명령은 명령’.
연합국의 폭격으로 독일 본국의 아녀자들이 죽고 있으니..
유대인들이 미국의 독일 상품 불매운동을 부추기기도 하니..
이 마을 유대인들이 저항군의 게릴라를 지원하기도 했으니...
오늘의 임무는, 마을의 유대인을 한곳에 모은 다음,
그 가운데 노동할 수 있는 남자들은 선별하여 강제 수용소로 보내고 나머지는 사살하라.
이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겠는 대원은 앞으로 나와라. 제외시켜 주겠다”
아.. 이 익숙한 대사는, 작년(21세기) 학교에서 색조 화장 및 복장 불량 학생들을 지도해야 했을 때 내가 우리 반에서 했던 말과 참으로 닮아 있던 것이다.
“내 마음에도 영 들지 않지만,,
교칙은 교칙..
색조화장은 안 된다고 규정에 있기도 하고..
학교에서 이런 걸 잡지 않으면.. 안 할 애들도 화장을 해볼까 그런 마음이 들게 되기도 하고..
다른 반 다 잡는데 우리 반만 안하면.. 담임들 사이에서 왕따당할 수도 있고...
그래도 너무 화장이 하고 싶은 사람은 명심보감 잠깐 쓰면 되니까...
감수하고 화장하던가..
그게 싫으면 화장을 안하면 되고..”
사람 목숨과 중학생 색조화장 사이의 넓디넓은 간극과는 별개로 직업인으로서 내가 느꼈던 당혹감을 그도 가졌구나 싶은, 그런 사람이 그런 명령을 내리고 그런 ‘작업’을 수행하고 이후의 생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엉엉.
명령은 명령이지만 그럼에도 수행하지 못하겠는 대원은 앞으로 나와라, 라고 말했던 그의 주저함. 그리고 동료들에게 나약한 겁쟁이로 여겨지거나 소외되더라도, 열외 제안에 응했던 10명의 대원들. 선별과 학살 사이에서 대부분의 대원들은 임무를 다했고, 그곳의 유대인은 수용소로 가거나 죽임을 당했지만 그래도 그 주저함이 낳은 잠시의 순간이 내 마음속에 울림을 남겼다. 확신이 어려운 사람들은 답답할 수 있지만, 매몰되지도 않는다. 매몰되어 저질렀다 하더라도 반성하고 아파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기억전쟁 2부의 7장 ‘1942년 유제푸프와 1980년 광주’를 내 방식으로 정리하여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후 44명의 좋아요와 전역모 편집부장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아래는 그 유제푸프와 광주에 대한 기억전쟁 이야기.
덧. 주저하는 마음에 대해 아름답게 쓰기는 했지만, 역사학자 데버라 립스탯처럼 옳고 그름에 대해 사유하고 명확하게 판단하여 단호함을 보여야 할 때에는 확실하게 입장을 표명 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내가 늘 옳지 않을 수 있다고 회의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하고 책임지는 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