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살이, 마이너리티로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근육에 대하여
첫째가 미국 공립학교 킨더(Kindergarten)에 입학하면서 나의 '도시락 라이프'도 막을 올렸다.
매일 아침 6시, 주방의 불을 밝히며 메뉴를 고민한다.
이 고민이 은근히 까다로운 이유는
도시락은 집에서 우리끼리 먹는 음식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문화를 '냄새'와 '시각'으로 마주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직 어려 인종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은 없다. 그럼에도 내가 도시락 메뉴 앞에서 주춤거리는 이유는 직접 런치 봉사를 하며 목격한 몇몇 장면 때문이다.
자신의 음식이 친구들과 다른 것이 부끄러웠는지, 한 숟갈 뜨고 얼른 뚜껑을 덮고 다시 눈치를 보며 뚜껑을 열기를 반복하던 한 아이.
그리고 내 아이가 김밥을 싸간 날, 참기름 냄새에 "이우(Eww)!"라며 얼굴을 찡그리던 백인 아이. 당황한 나와 달리 타격감 제로였던 내 아이는 당당히 식사를 마쳤지만, 그날 이후 도시락 통을 채우는 내 손길엔 보이지 않는 망설임이 앞섰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불쑥 물었다.
"엄마, 학교 도시락에 김치 좀 싸주면 안 돼요?"
씻은 김치나 다름없는 유아용 김치였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아이가 겪을지도 모를 무례한 시선이나 상처로부터 보호하고 싶은 본능 때문이었다.
그날 밤, 내가 운영하는 스레드(Thread)의 요리 계정에 조언을 구했다. 미국 생활 선배와 현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의 생각은 160개의 댓글이 달릴 만큼 제각각이었다.
"절대 안 된다. 망신당한 기억이 평생 간다"는 반대파부터, "요즘 K-푸드가 힙해서 오히려 인기 폭발이다"라는 낙관파, "점심 한 끼 정도는 현지 아이들과 비슷하게 먹는 사회성도 중요하다"는 실용파까지.
고민 끝에 나는 아이와 마주 앉았다. 나라마다 먹는 음식이 다르고, 누군가에게는 우리의 소중한 음식이 낯설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 줬다.
"그럼에도 가져가고 싶다면 엄마는 기꺼이 싸줄게."
사실 이 결정은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인종 다양성'과 '아이의 성향'을 고려한 판단이기도 했다.
이 동네는 비교적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째는 남의 시선에 쉽게 무너지기보다 자신의 주장을 할 줄 아는 아이였다. 만약 이 동네의 다양성이 낮거나 매사에 조심스러운 둘째였다면 나의 판단은 달랐을 수도 있다.
나는 아이가 직접 부딪히며 느끼는 '다름'을 스스로 소화해 낼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길 바란다.
내 염려 때문에 아이가 마주해야 할 세상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리고 아이는 점점 더 커서 내 품 밖으로 나아갈 텐데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아이는 종종 김치와 참기름 향 가득한 김밥을 싸 들고 학교에 간다.
그리고 이웃집 혼혈 아이는 매주 우리 집에 놀러 와 신라면을 찾고, 뒷집 백인 아이는 우리 집 김밥을 별미처럼 먹고 간다.
하교 후 아이의 도시락 통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것을 볼 때, 나의 걱정이 어쩌면 기우였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러다 어느 날 아이가 도시락을 미국식으로 싸달라면 누구보다 맛깔난 미국식 도시락을 싸 줄 것이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미국에서의 한국인은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라고.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크고 작은 고민이 내 발치에 채이고, 나조차도 왠지 모르게 주눅 드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다짐한다. 나와 내 아이의 마음 근육이 조금 더 단단해져야겠다고.
나는 아이가 스스로 낯선 시선을 이겨내고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 주고 싶다.
낯선 땅에 홀로 서서 나를 지켜내는 힘. 그것이 내가 미국 땅에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