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니까 어때? 좋아?"
미국 생활 만 1년이 되어갈 즘, 잠시 한국에 들어갔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해외살이 1년 차에 느끼는 ‘좋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바로 익숙한 한국에서는 없었던 ‘이방인이 누리는 자유'였다.
이곳 외국인들 사이에서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다.
나는 아직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도 내 언어와 문화를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실은 나를 어떤 틀에도 가두지 않는다. 내 나이나 배경을 깊게 묻지도 않고 그냥 나를 나로서 바라봐주는 이들이 나는 왠지 모르게 편하다.
이 얕지만 편견 없는 관계 속에서 나는 아무런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현재의 나'로만 존재한다.
사실 이곳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 느끼는 묘한 긴장감은 그들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통하고 잘 알기 때문에 생기는 조심스러움일 것이다. 상대의 말 뒤에 숨은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내고, 상대의 성향과 배경에 맞춰 내 위치를 적절히 설정해야 하는 그 익숙한 감각들.
결국 내가 외국인들 사이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항상 타인의 마음을 신경 쓰느라 분주했던 내 안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선택한 일시적인 휴식과 같다.
이 '친절한 무관심'과 '적당한 거리감'은 나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나를 증명해 주던 배경과 학벌, 관계들이 사라진 이곳에서 “그럼 진짜 나는 누구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로 섣불리 판단받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나로만 평가받는 이 시간은 나라는 사람을 다시 정의하게 만든다.
이 자유는 어쩌면 내가 이곳에 완전히 뿌리내리지 않은 '손님'이기에 한시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한이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이 낯선 공기 속에서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며 지쳤던 마음을 식히며,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가는 이 과정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