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살이, 누군가에겐 천국 누군가에겐 유배지인 이유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낯선 땅의 엄마들

by 적응형이방인

'해외에서 아이 키우는 엄마' 혹은 '주재원 와이프'. 이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보통 정형화된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곁에서 마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고 혼자만의 고요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식당 못지않은 밥상을 차려내며 살림의 정점을 찍는 사람도 있다. 골프와 소셜라이징에 진심인 사람, 해외에서도 대치동 못지않은 교육열을 불태우는 사람, 혹은 대학원이나 취업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꿋꿋이 이어가는 사람까지.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도 존재한다.

기대와 다른 해외살이에 깊은 우울감을 느끼며 하루빨리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익숙했던 커리어를 포기하고 '누구 엄마'로만 남겨진 현실에 매일 밤 눈물짓는 이도 있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천국인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유배지다. 각자의 방식대로, 혹은 각자의 고통을 견디며 헤쳐 나가는 수만 가지의 해외살이가 존재한다.




1. 성향이 결정하는 해외 생활의 만족도

나고 자란 터전을 떠나 언어도, 문화도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다 큰 어른이 마주하는 생애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혼자 해외로 이주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아이를 데리고 해외로 이주하는 엄마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엄마의 삶에는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치지만, 나는 결국 ‘타고난 성향’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내향인 엄마의 해외살이: 고요함과 외로움 사이

새로운 자극보다 익숙한 안정감을 선호하는 내향인 엄마에게,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는 해외살이는 그 자체로 버거운 숙제다. 낯선 땅에 던져진 이방인에게 해외생활은 자칫 잘못하면 거대한 ‘침묵의 섬’이 되기 십상이다.


특히 내가 거주하는 미국처럼 인구 밀집도가 낮은 나라는 그 고요함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한국처럼 슬리퍼를 끌고 나간 카페에서 자연스레 사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의도해서 차를 몰고 나가지 않으면 창밖에 러닝 하는 사람, 아마존 기사님, 뒷마당에 놀러 온 다람쥐만 보다가 하루가 저문다.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사람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고립되기 쉬운 해외에서의 삶. 내향인에게 해외 생활이란, 어쩌면 외로움과 매일 싸워야 하는 인생 최대의 도전이 되기도 한다.


외향인 엄마의 해외살이: 낯섦이 에너지가 될 때

반면 낯선 환경에서 에너지를 얻는 이들에게 이곳은 매일이 새로운 '모험의 장'이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마트 계산대나 영어 클래스에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먼저 인사를 건내고 사람을 사귄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손짓 발짓을 섞어서라도 소통하고, 그 서툰 과정조차 '오늘의 에피소드'로 즐긴다.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에 주저하지 않고 발을 내딛는다. 이런 외향인들에게 해외는 아이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새롭게 주어진 기회이기도 하다.


이 성향차이는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외향인 첫째와 내향인 둘째를 키워보니 적응 속도와 만족도가 확연히 다르다.

만약 해외살이를 고민 중이라면 본인과 아이의 성향을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는 목적지와 라이프스타일을 계획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2. 자녀 연령대가 바꾸는 해외육아의 난이도

자녀가 있는 경우, 아이는 엄마의 해외생활 만족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흔히들 아이의 만족도와 적응이 엄마의 만족도와 적응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잘 지내면 엄마도 잘 지낼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하나 중요한 변수가 있는데, 바로 아이의 연령대다. 아이의 나이는 해외에서 엄마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영유아기: 육체적 육아 난이도의 정점

영유아기는 한국에서나 해외에서나 육아 난이도의 정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거주하는 미국은 한국에서 누리던 조부모님의 도움이나 촘촘한 보육 시스템을 기대하기 어렵다. 높은 물가 탓에 육아를 아웃소싱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모든 것을 엄마 혼자 감당해야 한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자주 아플 수 있는데, 이때 한국보다 의료가 편리한 나라는 없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영유아 시기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해외 생활 만족도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한다.

반면 해외 중에서도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에서 거주할 경우,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집에 가정부가 상주하고 운전기사가 있는 동남아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수월하게 영유아기 육아를 할 수 있어 엄마의 만족도가 비교적 높을 수도 있다.


유치원 ~ 초등 저학년: 해외살이의 '골든타임'

개인적으로 해외살이 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유치원에서 초등 저학년인 것 같다.

아이가 기관 생활을 할 나이이기 때문에, 기관에만 잘 적응하면 엄마에게도 비로소 취미나 공부를 시작할 '숨구멍'이 생긴다. 아이가 아픈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변화에 가장 유연하다. 새로운 언어를 빠르게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도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한다. 현지에서 만나는 친구들 역시 편견 없이 다가오는 시기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한결 부담이 적다.


초등 고학년 ~ 고등학생: 가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로

아이가 초등 고학년에서 고등학생일 때 해외살이를 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외살이 커뮤니티나 주변 지인들의 사례를 보면, 이 시기가 가장 고민이 깊어진다. 아이의 사춘기와 해외 이주라는 두 가지 큰 변화가 맞물리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하고, 한국 귀국 후의 학업 적응과 입시 문제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다.

짧게 몇 년만 계획했던 해외생활이 기러기 생활로 이어지기도 하고, 영주권 취득 후 현지 대학 진학이라는 선택지 앞에서 가족 전체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기도 한다.




정답은 없다, 나만의 답을 찾아갈 뿐

해외 살이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의미 없는 말은 "내가 이 나라 살아보니까 이렇더라"라고 단정 짓는 일과 "한국과 해외 중 어느 곳이 더 살기 좋냐"는 논쟁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어떤 지역에서, 어떤 상황과 가족 형태로 사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살이 중 엄마의 삶이 어때야 하는가에도 정답은 없다.

우리는 그저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엄마로서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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