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과 요리 실력만 늘어요.
사실이었다. 이제 고작 만 1년을 살았지만, 미국에서 산다고 영어가 저절로 느는 기적은 없었다. 실제 10년, 20년을 미국에 살고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영어를 좀 못하더라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한인 커뮤니티가 잘 되어 있고, 이제는 챗지피티나 제미나이 같은 AI가 웬만한 정보 검색과 번역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는 세상이니까.
문제는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외국인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소통해야 하는 찰나의 순간들이다. 대학시절 캐나다에서 잠시 머물렀지만, 10년 넘게 영어와 무관한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을 하다 온 내게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처음에는 마트에서 간단한 질문을 하거나 아이 유치원에 전화 한 통 거는 일조차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특히 말이 빠르거나 발음을 흐리는 네이티브와의 대화는 항상 진땀을 빼게 한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한국에선 할 말은 하고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여기선 말귀를 못 알아듣고 어색한 미소만 지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니 꽤 버거웠다.
유독 영어가 꼬이는 날이면, 집에 돌아와 ‘미국에서의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 해외 생활 동안 내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숙제는 결국 ‘영어’라는 장벽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아닐까.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이 사회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 싶고, 무엇보다 나보다 빠르게 영어를 흡수할 아이들 앞에서 위축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사소한 환경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영어로 설정하고, 집안일을 할 때도 영어 강의를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았다.
커뮤니티 컬리지의 클래스를 듣고, 영어로 요가 수업을 듣고, 종종 외국인과 조인해서 골프도 치고, 컬리지 친구들과 커피 모임도 한다.
영어를 ‘공부’가 아닌 ‘생활’로 끌어들이기 위한 나만의 몸부림이다.
아이라는 공통분모, 그리고 뻔뻔한 최면
가장 좋은 연결점은 아이들이다. 아이 친구 부모들은 ‘육아’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비교적 마음이 열려있고 대화도 수월한 편이다.
외향적인 첫째 덕분에 일주일에 두세 번씩 잡히는 플레이데이트. 나는 종종 집에 초대해 삼겹살이나 김밥을 나누며, 여전히 서툴고 툭툭 끊기는 영어지만 어떻게든 소통해 보려 애쓰고 있다.
학교 학부모 봉사도 빠지지 않는다. 미국인 엄마들 사이에서 혼자 30분 넘게 침묵의 섬처럼 머물다 오는 날도 허다했다. 하지만 항상 얼굴을 비추고 무엇이라도 도우려는 내 진심을 알아준 걸까. 조금씩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늘어난 건 유창한 문장력이 아니라 ‘뻔뻔한 자신감’이었다. 단어 몇 개를 나열할지라도 내 생각을 전달하려는 힘. 못 알아들었을 때 대충 웃어넘기는 대신 “미안한데, 한 번만 더 천천히 말해줄래?”라고 당당하게 물을 수 있는 용기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한국 사람인 내가 미국 온 지 고작 1년 만에 영어를 못 하는 건 당연하다.‘ ‘저 사람들은 한국어 한마디도 못 하지 않나.’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보면 참 기특하고 귀여워 보였던 기억을 떠올린다. 물론 내가 그들처럼 귀여워 보일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AI 번역기가 다 해주는 세상에 굳이 스트레스받으며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누군가 던진 농담을 1초 만에 알아듣고 함께 웃음을 터뜨릴 때 생기는 그 유대감.
핸드폰 화면이 아닌 서로의 눈을 보고 하는 그 즉각적인 소통이야말로 관계의 핵심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는 하루아침에 늘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외국인 앞에 서면 긴장하고, 하고 싶은 말의 절반도 채 꺼내지 못한 채 뒤돌아서며 이불 킥을 한다. 여전히 내 영어는 서툴고 보완할 점 투성이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못한다고 숨지 않는 아시안 학부모’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다.
진심을 전하려 애쓰는 내 눈빛이 통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나의 미국 생활은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