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밥 솥 두 번 키던 워킹맘의 미국 주방 일지
"일 년에 밥 솥 두 번 키던 워킹맘의 미국 주방 일지"
내가 운영하는 SNS 요리 계정의 소개 문구이다.
과장 없는 사실이다.
신혼 때 장만한 밥솥은 일 년에 딱 두 번,
부모님이 오실 때만 제 기능을 확인하는 장식품이었다.
아이를 낳고도 일을 한다는 핑계로 요리는 내 우선순위 밖이었고,
양가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반찬과 햇반, 배달 음식만이 내 구세주였다.
그런 내가 SNS에서 보던 ‘미국 사는 엄마들’의 삶은 경이로움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매일 새벽 눈을 비비며 도시락을 싸고,
10인분 요리를 거뜬히 해내는 모습들.
‘미국에서 왜 저렇게까지 유난스럽게 살아야 하지?’
그때의 나에게, 미국 생활 2년 차가 된 지금의 내가 말해준다.
친구야 이곳에서 요리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이고,
네 안의 ‘장금이’를 깨우는
일생일대의 도전이야.
소문으로만 듣던 미국의 외식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네 가족 햄버거만 먹어도 5만 원은 기본이고,
제대로 된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면 15만 원은 각오해야 한다.
어느 날, 한식당에 가서 족발에 순두부, 파전에 막걸리까지 야무지게 시켰다가 마주한 계산서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200불.
텍스와 팁까지 포함하면 25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아니 이 음식을 이 돈주고 사먹어야 한다니..‘
그나마 맛이 있으면 다행이다.
비싼 돈을 내고도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마주할 때 밀려오는 허탈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시작은 살기 위한 ‘생존 요리’였지만,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잡자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요리 세포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한식은 시작일 뿐이었다.
나의 주방은 어느덧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실이 되었다.
집에서 소곱창을 삶고, 떡을 찌고, 빵을 굽는다.
파스타, 라멘, 짜장면은 기본이고 팟타이 까지 만들어 먹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상한 것은 묘한 ‘도전의식’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도 내가 집에서 만들 수 있을까?’ 싶던 메뉴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갈 때의 쾌감.
미국의 낯선 식재료로 한국의 맛을 재현해 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일터에서 느끼던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놀라운 것은 요리는 때로는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가장 확실한 '휴식'이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육아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타국 생활 속에서, 요리만큼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노력한 만큼 즉각적인 결과물을 보여주는 일은 없다.
요리를 할 때는 잡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진다.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말없이, 빠르게 비워주는 순간의 행복은 그 모든 고단함을 잊게 한다.
“미국 엄마들은 왜 저렇게 다 장금이야?”라며 의아해하던 나는 1,300명의 팔로워를 둔 요리 계정을 운영한다.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아주 소소한 숫자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 레시피를 따라 했다며 고맙다는 댓글을 남겨줄 때, 이 별거 아닌 것에 타향살이의 외로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뿌듯함이 차오른다.
진부하지만 한국인은 자고로 ‘밥심’으로 산다.
이 낯선 타국에서 나와 내 가정을 굳건히 지탱하는 힘 역시 결국은 따뜻한 밥 한 그릇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내 머릿 속 잡념을 없애고 어제의 나를 뛰어넘는 또 다른 요리에 도전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이 미국집 주방의 불을 켜고 칼과 도마를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