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살이에서 진짜 기대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
최근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해외나 제주도로 떠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
수천 수억 원의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단행하는 그들의 선택은 늘 뜨거운 관심사가 되곤 한다.
이제 이는 연예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 과감히 해외행을 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이라는 계기가 있었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퇴사하고 온 가족의 미국행을 결정하기까지는 ‘아이들의 교육’이라는 명분이 가장 컸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내게 지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정해져 있다.
아이들 영어 많이 늘었어?
내 생각은 그렇다. 영어 실력 그 자체, 즉 단기간의 눈에 보이는 성과가 목적이라면 해외 살이보다 한국 영유가 훨씬 효율적인 답이 될 수 있다.
실제 나는 한국 영유의 압도적인 아웃풋을 목격하며 진심으로 감탄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 둘째가 미국 유치원에 입학한 시점에, 아이의 절친한 친구는 한국에서 영어 유치원에 들어갔다. 등원 개월 수도, 출국 전 영어 수준도 비슷했던 두 아이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두 아이의 성적표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 영유를 다닌 친구는 이제 영어 문장을 읽기 시작했고, 제법 긴 단어들을 스스로 써 내려간다. 지난 연말 그 친구가 미국으로 놀러 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유창한 소통은 물론 발음까지 네이티브에 가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현지 사립 유치원을 1년이나 다닌 우리 둘째는 어떤가. 리딩과 라이팅은커녕 이제야 알파벳을 겨우 읽고 쓰는 수준이다.
소위 말하는 ‘학습식 영어’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나날이 늘어가는 것은 생존을 위한 말하기와 몸으로 부딪히는 '놀이 영어’뿐이다.
하지만 매주 아이가 받아오는 학습 목표지를 보면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미국 유치원은 이 나이대 아이들에게 영어를 ‘공부해야 할 대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영어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생활의 도구’ 일뿐이다.
반면 한국의 영유만큼 체계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길은 없다. 잘 짜인 시스템 안에서 반복 학습을 통해 영어 실력을 빠르게 키울 수 있다.
실제 미국에서 몇 년을 살다 돌아간 아이들이 한국 영유 출신 친구들을 따라가지 못해 레벨 테스트에서 고전하거나, 부족한 리딩과 라이팅 실력을 메우느라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는 흔한 레퍼토리다. 어렵게 쌓아 올린 스피킹마저 귀국 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미국에 살면 한국어도, 영어도 둘 다 잘하지 못하는 '0개 국어'가 된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비용 측면에서도 영유는 효율적인 선택이다.
각종 생활비와 해외 살이를 위해 한국에서 포기해야 했던 기회비용을 따져보면, 오히려 영유 학원비가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지금 미국에 살고 있으며, 내 아이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 것일까.
이 질문은 출국 전부터 지금까지 나 자신에게 던지는 끊임없는 화두였다.
미국살이 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야 어렴풋이 그 답을 알 것 같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시간 속에, 아이들이 배우는 진짜 가치는 따로 있었다.
아이들이 얻은 가장 소중한 수확은 수만 번 틀리고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배짱이다.
영어 한마디 못 하던 아이가 낯선 땅에 던져져 스스로 생존법을 터득해 나가는 과정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다.
서툰 언어를 내 것으로 만들려 분투하고, 거절당해도 다시 웃으며 다가가는 매일의 도전. 그것은 점수로 매길 수 없는 '근성'이 되어 아이의 마음에 새겨졌다.
훗날 어떤 거친 환경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뿌리가 될 것이다.
출국 전 비자 인터뷰 날, 흑인 여자아이가 인사를 건네자 둘째는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지금 아이는 5개국 이상의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누구보다 즐겁게 어울린다.
피부색도, 언어도, 삶의 방식도 제각각인 친구들 속에서 '우리 모두는 다르기에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하고 있다.
요즘 아이의 관심사는 지구 반대편까지 뻗어 나간다. 혼자 지구본을 돌리며 탐구하는 시간이 아이가 가장 몰입하는 순간이다.
“엄마, 이 친구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 거기선 뭘 먹어?” 낯선 외국인을 보고 울던 아이는 이제 없다. 대신 넓은 세상을 궁금해하는 꼬마 탐험가가 남았다.
서울에서 미취학 아동 둘을 키우던 나는 늘 불안한 엄마였다. 주변의 속도에 초조했고, 정해진 길을 따라갈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비로소 나는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내 생각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남들의 속도가 아닌 아이의 보폭에 맞춰 걷기 시작하자, 마음이 어느 때보다 고요해졌다.
물론 어느 쪽이 더 옳은 선택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이 두 선택은
애초에 목적과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해외살이에서
진짜 기대해야 할 것은
영어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훗날 한국에 돌아가 아이들이 미국에서의 오늘을 흐릿하게 기억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뤄둔 학업을 메우느라 후회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우리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
아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유연하고 단단해진 것, 그리고 다양성을 몸소 깨닫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이 먼 땅에서 가장 귀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발행했던 글들을 한데 모아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엄마로>를 엮게 되었습니다.
책의 구성을 위해 일부 글을 재발행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리며, 다시 읽어도 가치 있는 기록이 되도록 정돈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