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의 미학

AI 로봇, 그리고 인간.

by 밀잠자리


주말 아침 침대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엄지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유영하던 중이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숏츠의 그 무한한 알고리즘의 바다에서 나를 멈춰 세운 건 어느 짧은 영상 하나였다. 제목이 아마 그래서 AI 로봇은 도대체 언제 나오냐고 였다. 영상 속 주부는 세탁기에 산더미 같은 빨래를 쑤셔 넣고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전투적으로 해치우며 집안 구석구석의 먼지를 털어내느라 씩씩대고 있었다. 화면 밖 나를 향해 아니 로봇이 다 해준다더니 대체 언제 해줄 거야 라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 표정이 어찌나 억울해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주부님의 그 불만은 머지않아 해결될 것 같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로봇들을 보면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수준이다. 사람처럼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건 기본이고 최신 유행하는 춤을 추질 않나 발로 걷어차여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갈 길을 간다. 심지어 인간과 달리기 시합을 벌이기도 하고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하는 녀석들을 보면 물리 법칙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관절을 제어하는 수준은 이미 궤도에 올랐다고 한다. 아마 곧 빨래 개기나 설거지 정도는 카메라 센서를 끄고도 해낼 날이 올 것이다. 테슬라의 옵티머스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가 우리 집 주방에 서 있는 모습은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게 될것만 같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게 좀 뜬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종종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다. 과연 이 똑똑하고 지칠 줄 모르는 녀석들이 인간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생각의 꼬리는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가 급기야 인류가 아직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까지 도달한다. 예를 들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계 프록시마 센타우리 같은 곳 말이다. 빛의 속도로 가도 4년이 넘게 걸리는 그곳을 인간의 수명으로 도달하려면 몇십 세대가 우주선에서 태어나고 죽어야 닿을까 말까 한 거리다. 냉동 수면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인간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여정이다. 하지만 로봇이라면 어떨까. 녀석들에게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배터리와 고성능 태양광 패널 그리고 자가 수리 키트만 챙겨서 보낸다면 한 세대 만에 혹은 그 이상이 걸려도 묵묵히 날아가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화성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탐사 로봇들을 보면 그 녀석들은 우주 개척 시대의 귀여운 조상님 격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곧 AI와 로봇이 결합하여 스스로 탐사하고 암석 성분을 분석하고 이것을 지구에 보고할지 말지를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시대가 올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녀석들의 능력이 무한하고 지치지 않는다 하니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 나는 되려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다면 아무리 AI가 발달하고 로봇 공학이 정점을 찍어도 절대 할 수 없는 건 없을까.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기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심판의 날이 오지 않고 인류와 로봇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유토피아가 온다면 그때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하며 시간을 때워야 할까.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은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리 AI가 날고 기어도 절대 침범할 수 없는 인간만의 성역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비효율적인 짓을 하며 낄낄대는 즐거움이다.


로봇에게 달리기란 철저히 이동 수단이다.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배터리를 가장 적게 쓰고 최단 경로로 이동하는 것. 이것이 녀석들의 최대 목적이자 알고리즘의 최선 솔루션일지 모른다. 입력된 목적지 없이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 낭비이자 오류다. 만약 내가 최신형 AI 로봇에게 야 나 오늘 아침에 동네 한 바퀴 10킬로미터를 뛰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 라고 자랑한다면 녀석은 내 회로가 타버렸다고 진단할 것이다. 에너지 효율 0퍼센트. 위치 변화 값 델타 0. 의미 없는 발열 행위 및 관절 마모 감지. 사용자 정신 상태 점검 및 수리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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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인간은 어떤가. 꿀 같은 일요일 아침 굳이 푹신한 침대를 박차고 나와 찬 바람을 맞으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사서 한다.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 행위다.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나갔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0의 행위. 하지만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심장이 터질 듯 박동하는 그 비효율적인 과정 끝에 찾아오는 러너스 하이. 그 짜릿한 뽕맛을 로봇이 알 리가 없다. 로봇이 마라톤 풀코스를 1시간에 주파한다고 해서 인간이 마라톤을 때려치울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기계보다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장이 터질 듯한 그 순간 아 나 살아있네 라는 생명력을 느끼기 위해 달린다. AI가 모든 노동을 대신해 주는 세상이 오면 오히려 인간은 땀 흘리는 스포츠나 직접 손에 물을 묻히는 요리, 붓을 드는 예술 같은 몸 고생에 더 집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결과보다 더 귀한 건 직접 겪는 과정이니까. 그리고 그것들만이 내 몸과 마음을 강하게 해주니까. 효율성이라는 잣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다시 우주로 눈을 돌려보자. 먼 훗날 프록시마 센타우리에 도착한 최첨단 AI 로봇은 지구로 완벽한 리포트를 보내올 것이다. 대기 성분 질소 70퍼센트 산소 10퍼센트. 지표면 평균 온도 섭씨 15도. 토양 내 유기물 반응 없음. 생명체 존재 가능성 희박.


하지만 그 건조한 데이터를 받아보며 감탄하는 건 결국 인간의 몫이다. 고화질 카메라로 전송된 외계 행성의 노을 사진을 보며 인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세상에 저 붉은 노을 좀 봐. 꼭 산호세의 새벽하늘을 닮았네. 왠지 외롭고도 아름답구나.


AI는 질소 70퍼센트라는 사실을 관찰하고 분석하지만 인간은 거기서 고향 같다는 의미를 찾아내고 감정을 이입한다. 우주가 아무리 광활하고 신비로워도 그것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껴줄 지성 즉 우리가 없다면 우주는 그저 차가운 돌덩어리와 뜨거운 가스 덩어리의 물리적 나열일 뿐이다. 탐험은 내구성 좋은 AI가 발로 뛰겠지만 그 탐험에 왜 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발견의 순간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건 여전히 우리의 특권이다. 의미 부여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비효율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나약함에 있다. 로봇은 팔이 고장 나면 부품을 갈아 끼우면 그만이다. 프로세서가 낡으면 업그레이드하면 된다. 데이터만 클라우드에 백업해두면 이론상 영생도 가능하다. 녀석들에게 죽음이란 전원이 꺼지는 것일 뿐 다시 켜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부품 교체 어림도 없다. 무릎 연골이 닳으면 아껴 써야 하고 심장이 멈추면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는 늙고 아프고 언젠가 반드시 작동을 멈춘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즉 우주에 단 하나뿐인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흘러가는 이 시간이 사무치게 소중하다. 영원하지 않기에 귀한 것이다. 어느새 등이 굽어가고 몸살 기운에도 힘들어하시는 여든의 아버지를 보며 느끼는 애틋함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고등학생 딸아이를 보며 느끼는 벅차오름과 아쉬움. 이 모든 감정은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존재만이 누릴 수 있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특권이다.


AI가 인간의 표정 근육을 수천 개의 모터로 흉내 내며 사랑합니다 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기에 오늘 하루가 더 소중하고 서로를 더 애틋하게 바라보는 그 절절한 마음의 떨림까지 가질 수 있을까. 글쎄 그건 아무래도 최신형 GPU 수천 개를 갖다 박아도 연산이 안 될 것 같다. 사랑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결핍에서 오는 것이니까.


그러니 나는 오늘도 안심하고 운동화 끈을 묶는다. AI에게 일자리를 뺏길까 봐 걱정하기보다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이 비효율적인 쾌락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유한한 내 심장이 힘차게 뛰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현관을 나서며 마음속으로 로봇에게 한마디 건넨다.


로봇아 너는 충전기 꽂고 전기나 마시렴. 형은 좀 달리고 올게. 이 바람의 맛과 근육의 통증은 나만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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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