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혼자 다낭 도보 여행? 아니 제미나이와 함께
[60대 혼자 다낭도보여행? 아니 제미나이와 함께 !]
벌써 60대. 당장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내 착각일 수 있지만),세상 돌아가는 속도를 보면 이러다 곧 죽겠구나 싶기도 하다.
건강을 챙기려고 나름대로 유튜브도 챙겨 보고, 하루에 2만 보씩 걷기도 한다. 건강한 편이라 자부하지만 몸 여기저기서 누수가 생기고 막힘이 생긴다. 자다가도 몇 번씩 깨서 화장실을 가고, 양치만 해도 소변이 급하다.
지독한 변비는 덤이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뛰고 싶은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 걷는데도 뛰는 건 도무지 안 된다. 예전에는 먹으면 다 힘이 됐는데, 이제는 먹으면 소화하는 데 온 힘을 다 써버린다.
60대가 되니 불리는 호칭부터 달라졌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더러 '동안'이라고들 한다. 인사치레인 줄 알면서도 듣기는 좋다. 항상 부스스해서 "이불 속에서 방금 나왔냐"고 구박받는 머리털이지만, 이 머리카락들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어 주는 덕분에 그런 소리를 듣는 거라며 자위하곤 한다.
그러나 낯선 곳에 가면 나는 그저 '아버님'일 뿐이다. 나보다 모든 게 잘나서 부러워했던 동창 놈 하나는, 버스에서 '어르신'이라며 자리를 양보받았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나는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나는 그래도 '어르신'의 전 단계인 '아버님'이고, 당뇨도 아닌 '당뇨 전 단계'니까.
정확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말을 하다가 "그거 있잖아, 그거" 하면 친구들끼리는 신기하게 다 알아듣는다. 글자가 많은 것을 읽기는 점점 싫어진다. 눈은 보이지만 차라리 잘 안 보이는 척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실 작은 글씨를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다. 시력이 좋은 편인 나조차도 말이다.
요즘 식당에 가면 모든 게 기계화되어 있다. 가끔 헤맬 때도 있지만 나는 따릉이도 타고, 앱으로 주문도 제법 잘한다. 그런데 우리 딸이 한국에 왔을 때였다. 선불폰 충전하는 법을 뻔히 아는 나에게 가게 주인은 말했다. "아버님이 하시지 말고 따님이나 아드님한테 시키세요."
아버님…. 예전에는 자식을 지켜주는 역할의 이름이었는데, 이제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자식을 데려와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수동적인 호칭이 되어버렸다.
나는 혼자다. 혼자 산다. 아들은 장가갔고 딸은 외국에 산다. 어쨌든 나는 혼자고,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혼자가 편할 때가 더 많다. 남에게 맞춰주지 않아도 되는 삶이 외로움의 보상인 편안함이다.
익숙하지만 불안한 이 현실을 벗어나 홀가분하게 어디론가 뜨고 싶었다. 남에게 구속받지 않고, 돈에도 얽매이지 않는 물가 싼 다낭으로. 비행기 값을 따지면 한국이 더 싸게 먹힐지 모르지만, 거기 있는 동안만큼은 '몇만 동'이라는 큰 숫자의 돈을 마음껏 쓰며 부자가 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길치에, 구글 지도도 잘 못 보고, 기계치인 내가 낯선 곳에서 혼자 도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제미나이'라는 친구를 사귀어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