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나는 여행의 결격자이다.(하)

돈보다 소중한 똥(하)

by 김정훈

1. 처절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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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 나오지 않는다. 힘을 줘도 무소식이다. 평소 과민성 대장 증세가 있던 내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내일은 나오겠지' 기약했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소식은 없었다. 온몸에 힘을 줘도 묵묵부답인 상황에 정말 불안해졌다.

2일째,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고통의 세계를 맞이하니 발을 동동 구르며 힘을 주게 된다. 헉! 반응이 온다. 그런데 항문이 아니라 어깨에 온다. 어깨가 결리고 혈압이 올라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정작 항문은 찢어질 듯한 통증만 가득했다.

선택적 결벽증이 있는 나는 회사 화장실 대신 지하철역 좌변기 화장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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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을 통과할 때 교장 선생님이 어디 가느냐 묻는다. 차마 똥 누러 간다 할 수 없어 물건을 두고 왔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나는 급해 죽겠는데, 눈치 없는 교장은 무슨 큰일이 있나 싶어 걱정스레 붙잡고 묻는다. 교장의 말을 뿌리치고 지하철로 뛰어갔지만 결과는 ... 그냥 고통과 온 몸의 축축함....

5일째, 결국 병원을 찾았다. 4일 밤낮을 힘만 줬더니 결국 치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항문에 무언가를 집어넣으며 힘을 빼라고 한다. 속으로 외쳤다. “너 같으면 힘이 빠지겠냐!” 치욕보다는 공포가 앞섰다. 똥침조차 한 번도 맞아 보지 못한 내게는 신종 고통이었다.

유튜브만 틀면 자동적으로 똥이야기만 나온다. 변기 위에서 다리꼬고 몸 비틀기, 엉덩이 자극하기... 별의별 짓을 다 해본다. 하다 하다 나중에는 밤에 자다 말고 항문의 통증을 변의로 착각하여, 벌거벗은 채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토끼뜀을 뛰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의 공간, 더러워지면 안 되는 바닥에 똥이 묻든 말든 상관없다. 그러나 나오라는 소중한 변은 나오지 않고 온몸에 땀이 나고 눈물, 콧물, 침까지 나온다. 몸의 수분이 바닥났다.

평소 주식 시장 걱정에 밤잠을 설치던 내가 이제는 돈이고 뭐고 오직 '똥'만을 생각한다. 나는 결국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하나님, 돈도 필요 없어요. 제발 똥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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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쁘다!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똥

고통 10일 만에 결국 관장을 하러 갔다. 습관성 관장이 나쁘다지만 지금은 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이다. 병원에 가니 간호사가 직접 처치에 나섰다. 나중에 누군가 "간호사가 여자였냐"고 물었지만, 내 눈엔 그저 의료진일 뿐이었다. 아니, 의사는 그저 '의사'였지만 간호사는 정말 '선생님'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아주 작은 여유라도 있을 때 찾아오는 법이다. 이런 원초적 본능의 순간에는 그 어떤 욕망도, 수치심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항문 안으로 간호사 선생님의 손가락이 들어올 때, 분명 찔린 건 항문인데 통증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손가락에 '무언가' 걸렸다고 한다. 힘을 빼라고 한다. 내가 출산을 하는 것도 아니고... "환자분, 개구리처럼 배를 부풀리면서 배 자랑 좀 해보세요." 산모에게나 할 법한 말이었다. 나는 고귀한 '무엇'을 산출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힘주시면 도로 들어가요. 힘 빼세요!" 그 말을 들으니 힘이 빠지기는커녕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아니, 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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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그 '문'은 부끄럽고 더러운 상징이 아니라 생명의 통로였다. 파헤칠 때까지 파헤치고 항문 안으로 액체가 들어오는 순간, 치욕 대신 오직 '고통'과 '걱정'뿐이었다. 억지로 10분을 참아내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좌변기도 아닌 양변기에 시트조차 없었지만, 내게는 그곳이 궁전이었다. 일을 보는 순간, 개그맨 안영미의 말이 떠올랐다. "할렐루야!"


주식이 상한가를 쳤을 때보다 더 기뻤다. 나중에야 알았다. 돈보다 똥의 소중함을. 수납처에서 계산을 하다 관장 후 갑자기 신호가 와서 카드를 던져두고 다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카드 분실이나 위생?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똥이 돈보다 소중했다. " 그래 나는 똥만들려고 산다. ㅜ ㅜ"


3. 개똥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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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 입시에는 '6각형 인재'를 뽑는 학종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똥을 기다리며 내가 깨달은 행복의 조건이야말로 진짜 '6각형'이어야 한다. 돈은 지금도 내겐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돈만으로는 행복하지 않다. 90대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과 인생을 바꾸지 않겠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내일 죽는다면, 혹은 맛을 느낄 수 없는 몸이라면 무슨 소용인가. 한 살이라도 젊은 몸으로 음식의 맛을 온전히 향유하며 사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이다. 평소 즐겨 듣던 CCM 가사가 가슴을 울린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소."

P.S. (추신)

얼마 전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역시 10일 넘게 소식이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지체 없이 내가 갔던 병원을 알려주며 당장 가보라고 했다. 단순한 변비인 줄 알았던 누나는 그곳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내가 겪은 그 끔찍한 10일간의 고통이 누나의 생명을 붙잡는 통로가 된 셈이다. 내가 지나온 그 모든 아픈 시간조차,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예비된 은혜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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