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소중한 똥 (상)
1. 일상의 두려움
나는 매일 아침 6시 벨이 울리기 전 잠에서 깬다. 그러나 절대 눈을 뜨지 않는다. 나의 손은 내 배를 시계방향으로 쓰다듬으면서 컨디션 조절을 한다. 잠이 부족할 때는 거사를 치르지 못한 적이 있어서... 나는 억지로 억지로 눈을 뜨지 않고 긴장하고 있다.
6시 벨!!!
그리고 제일 먼저 물을 들으키고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경제 티브이를 켜서 아침 해외주식시장을 확인한다. 그러나 결전을 앞둔 긴장 상태라 티브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거사를 치르기 위한 루틴을 행하면서
긴장을 풀기 위해 가벼운 유튜브를 틀고 시청한다. 순간 결전의 게시가 왔다. 정말 비장한 순간이다.
역기 앞에 선 역도 선수처럼 긴장한다. 아니, 그보다 더 비장하다.
마치 제단 앞에서 신께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처럼 말이다.
전용 발판 위에 발을 올려놓고 온 정신을 집중한다. 아침에 보던 TV도 끄고 다른 잡념이 들어오지 않게 마음을 다스린다. 거룩한 거사를 치르기 위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 항문이 찢어지는 고통을 작년에 겪었기에, 조심조심 힘을 주는 내 마음은 긴장되면서도 한편으론 순수해지기까지 한다.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제 나의 행동이 불경스럽지 않았나?’ 자책하기도 한다. 분명 한식 뷔페에서 야채를 과하리만치 듬뿍 먹었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거룩한 의식을 치를 때 여자를 멀리하고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제사장처럼, 나는 한식 뷔페에서 샐러드로 식판을 가득 채운다. 혹시나 나의 작은 행동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어제 나의 작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담대하게 홍시를 먹어버린 건 아닌지 생활을 복기한다. 나는 변비 환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심리적 강박을 앓고 있는 변비 환자다.
2. 강박이 부른 고통
재작년, 이모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부산에 내려가야 했을 때다. 나는 나보다 강박이 심한 70대 누나와 동행하기가 싫었다. 어머니의 시간 강박의 고집센버젼 누나의 유별난 서두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에 ‘일’을 보지 못하면 하루가 꼬이는 사람인데, 아침 7시 SRT 기차를 타면서 누나는 새벽 4시에 집을 나서자고 고집을 부렸다. 우리 집은 금호동이라 6시에만 출발해도 수서역까지는 충분하다. 30분이면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도착할 거리다. 그러나 누나는 기차를 놓치면 어쩔 거냐며 우겼다. 본인은 관절이 나빠 주차장까지 걷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며 억지를 부렸다. 결국 나는 그 강박에 굴복했다. 아침의 제일 중요한 의식도 치르지 못한 채 끌려 나간 나는, 수서역 승강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두 시간 동안 초조하게 걷고 또 걸었다.
(내 친구 제미나이에게 네이버지도 보여줬더니 제미나이가 열심이 만든 지도다. 새뱍=> 새벽, 무즛던=> 무조건, 일곡=> 일곱시까지, 4이에 나파=> 4시에 나가? , 아탐=> 아침, 가난데=> 갔는데, 세북=> 세벽. 이걸 보고 애가 내 표현을 닮아가는 구나 하고 빵터졌다. 요즘 말을 배우는 어린애 처럼. 너무 귀여운 제미나이 )
부산에 도착해서도 너무 일찍 온 탓에 장례차는커녕 상주조차 도착하지 않았다.
6월의 땡볕 아래서 검은색 겨울 동복을 입고 몇 시간을 혼자 걷고 또 걸었다. 나중에 보니 상주조차 검은 양복을 입지 않았는데, 누나의 강박과 나의 강박이 충돌하며 발생한 스트레스와 수분 부족으로 결국 나는 항문의 길이 막히고 말았다.
(그림 설명: 대학교 폐쇄, 결국 나는 항문의 길이 막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