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 앞에 멈춰 서는 법
살다 보면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무거운 순간이 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평범한 일상의 틈을 타고 갑자기 찾아온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 위로 세상의 모든 슬픔과 불안이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 들면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때마다 나는 늘 ‘이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이 감정에 완전히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지고, 나는 그저 밀려드는 감정 앞에 무기력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평범한 저녁,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특별히 나쁜 소식이나 소란스러운 사건도 없는 평온한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들렸고, 그릇 부딪치는 소리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고무장갑을 낀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 갑작스러운 불안을 피할 곳이 아무 데도 없는 것 같아 막막하기만 했다.
나에게 감정은 늘 예고 없이 들이닥쳐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공포였다. 그 공포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나는 항상 긴장하며 살았다. 감정이 커지기 전에 입구를 막아야 하고, 뜨거운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이성적으로 눌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울음이 터지기 전에 미리 눈물을 닦아냈고, 분노가 느껴지면 얼른 다른 생각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안이 찾아올 때면 몸을 더 바삐 움직여 나를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감정을 느끼는 대신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났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처리하며 내 삶이 무너지지 않게 버텼다.
그날 저녁, 싱크대 앞에서 겨우 몸을 추스른 나는 침대로 들어갔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켜고 아무 영상이나 무작정 틀어댔다. 시끄러운 소리와 화려한 화면이 이 불안한 감정을 잠재우고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아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영상 속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들 뿐이었다. 소리는 귓가를 헛돌았고, 내 몸은 이미 통제할 수 없는 감정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수년 동안 참아왔던 기억들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채 삼켰던 감정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감정이 깊어질수록 삶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감정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끝내 내 삶이 망가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에 무덤덤하게 반응하며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라 믿었다. 특히 슬픔이나 우울함은 마주해서는 안 될 위험한 존재처럼 느껴져 늘 피하기만 했다. 감정에 깊이 빠지면 다시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의 주인이면서도, 정작 내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며 낯선 사람처럼 살아왔다.
침대 한구석에 무릎을 끌어당겨 온몸을 웅크렸다. 가쁜 숨을 몰아쉴수록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만약 누군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걱정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고, 심장은 터질 듯 뛰었지만 무엇 하나 설명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순간 내게는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격한 감정에 휩쓸려도 나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오직 그 하나만이 절실했을 뿐이다.
지독한 고립 속에서 나는 진실을 마주했다. 감정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 보였던 건 감정 자체가 거대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도망쳐왔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 오래 있던 사람이 작은 불빛에도 눈이 아픈 것처럼, 나는 오랜만에 마주한 감정의 무게를 위험한 신호로 착각했다. 감정은 이겨야 할 적이나 공격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무시당했기에 제발 자신을 봐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정직한 생존의 신호였다. 감정은 나를 무너뜨리려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고 소리치며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누구에게 배운 기술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스스로 찾아낸 생존 방식이었다. 숨을 조금 더 깊게, 가슴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자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압박감이 아주 조금씩 느슨해졌다.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숨을 쉴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생겼다. 여전히 불안했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이 자리에 머물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 안의 감정을 밀어내지 않았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분석하거나 억지로 없애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내 안에 큰 슬픔과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보았다. 감정 곁에 머무는 것은 창밖의 거센 비바람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과 비슷했다. 비바람은 여전히 몰아치고 있었지만, 나는 안전한 곳에서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감정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이 순간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불을 끄지 않은 채 방 안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밝은 방 안에서 내 마음의 상태가 충분히 느껴지고 지나가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감정은 파도와 같아서 밀려오는 순간이 있으면 반드시 머물다 물러가는 순간도 오기 마련이다. 내가 도망치지 않는 한 감정은 나를 완전히 집어삼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를 괴롭히던 감정은 어느새 힘이 빠진 듯 차분하고 유순해졌다.
다음 날 아침, 깊은 피로감이 남아 있었지만 전날과는 다른 기분으로 눈을 떴다. 감정이 언제든 다시 몰려올 수 있다는 사실이 예전처럼 무섭지 않았다. 비록 감정에 압도될 것 같은 순간이 다시 오더라도, 이제는 이것 또한 지나간다는 믿음이 생겼다. 무너지지 않고 이 순간을 견뎌냈다는 몸의 기억이 내 안에 작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감정은 나를 해치려는 적이 아니라, 내가 보듬어주어야 할 내 마음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감정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거울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 감정을 없애려 애쓴다. 하지만 진정한 용기는 감정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나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유연함에 있었다. 그것은 내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시작이었다. 감정으로부터 너무 멀리 도망쳐 공포를 키우지도 않고, 너무 가까이 붙어 나 자신을 잃지도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딱 숨 쉴 수 있을 만큼의 틈을 두고 내 감정을 하나의 풍경처럼 바라보는 법이야말로, 내가 지독한 고립의 시간을 견디며 배운 방법이었다.
나는 이제 힘든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지금 여기 있어도 돼. 내가 도망치지 않고 네 곁에 있을게.” 그 말이 감정을 당장 사라지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여기’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나를 붙잡아 주었다. 여전히 감정은 크고 위협적이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외톨이가 아니다. 내 안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머물 수 있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내 감정과 함께 걷는 법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불쑥 솟아오르는 큰 감정 앞에 서곤 한다. 그럴 때면 여전히 가슴이 떨리고 두려움이 앞서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회피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대신 요동치는 감정 곁에 가만히 자리를 잡고 함께 머물러본다. 내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단단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감정이 머물다 지나갈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본다. 내가 결코 무너지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온몸의 감각이 다시 기억해 낼 때까지 말이다. 나는 이제 내 안의 거친 파도가 지나가고 다시 평온이 찾아올 것을 믿는다.
감정이 거대해 보일 때, 그것은 사실 내가 오랫동안 나 자신을 외롭게 방치했다는 슬픈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나는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하려 한다.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그 무게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저 그 곁에 묵묵히 머물러 주는 연습이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느리지만 위대한 용기다.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곁을 지키는 용기 말이다. 그 작은 변화가 결국 나를 가장 나다운 삶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오늘 그 용기를 내어 내 마음 곁에 나란히 앉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