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조급함과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

by 그대로 박희룡

상대가 내 연락을 확인하고도 답이 없으면 내 마음속에서는 커다란 폭풍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서운함으로 시작된 기분이 순식간에 화로 변하고,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 조급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상대를 비꼬는 말을 던지고 말았다. 상대가 미안해서라도 당장 대답하기를 바랐지만, 나의 이런 조급함은 늘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상대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 선택한 말이 오히려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내 안의 시계는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간다. 나는 원하는 대답을 바로 들어야만 겨우 마음이 놓였다. 당시의 나에게는 상대의 사정이나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불안함을 없애는 것이 가장 급했기에 끊임없이 상대를 몰아세우곤 했다. “지금 당장 말해”라는 나의 요구는 상대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오직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강요했던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침묵을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이 상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괴롭힘이 되었음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침묵은 나에게 곧 거절과도 같았다. 상대가 아무런 말이 없을 때면, 나는 마치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큰 두려움에 빠지곤 했다. 그 막막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는 더 심한 말로 상대를 자극했다.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울음을 터뜨려 상대의 시선을 억지로 끌어왔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대답은 결코 진심이 아니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당장 원하는 대답만 들으면 그것으로 안심했다. 진심 없는 텅 빈 반응에 매달렸던 나의 모습은 지금 돌이켜봐도 참 안쓰럽고 위태로웠다.


불안함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이제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깊게 숨을 쉰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수만 가지 나쁜 생각들이 떠오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나 자신을 다독인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생각에 흔들려 상대를 탓하고 했겠지만, 이제는 요동치는 마음이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상대의 침묵은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다. 그저 상대에게 잠시 필요한 휴식일뿐이라는 것을 이제 안다. 나는 그 빈 시간의 고요함 속에 가만히 머무는 연습을 시작했다.


나는 늘 결론을 서둘렀다.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풀어야만 마음이 놓였다. 잠시 시간을 갖자는 상대의 제안은 나를 버리겠다는 말처럼 들려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상대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며 어떻게든 끝을 보려 했다. 하지만 억지로 받아낸 화해는 늘 더 큰 마음의 짐을 남겼다.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나누는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었다. 이제는 뜨거워진 마음이 식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배운다.


상대가 대화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은 속도로 마음을 정리할 수는 없다. 내 속도에 맞춰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존중이 아니라 괴롭힘일 뿐이다. 이제는 상대가 “나중에 이야기하자”라고 할 때, 그 말을 믿고 가만히 기다려 주었을 때 상대가 훨씬 더 진심 어린 대답을 들고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다림은 결국 상대를 향한 믿음의 다른 이름이었다.


내 마음속의 ‘불안한 아이’를 달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누군가의 답이 늦어 마음이 흔들릴 때면, 내 가슴 위에 손을 얹고 가만히 말해준다. “괜찮아, 답이 늦는다고 해서 네가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남의 반응에 내 전부를 맡겼던 습관을 하나씩 떼어내고 있다. 내가 나를 믿고 응원해 줄 때, 비로소 상대의 침묵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음을 배운다. 이제는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나를 위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려 노력한다.


조급함은 늘 오해를 불러왔다. 상대의 짧은 답변 하나에도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혼자서 나쁜 상상을 하곤 했다.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아”,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는 넘겨짚기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대부분 상대는 그저 바빴거나 피곤했을 뿐이었다. 내 마음대로 추측하고 상대를 몰아세웠던 지난날들이 미안해진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를 믿고,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불안함으로 채우지 않으려 한다. 마음 한구석 비어있는 공간을 그대로 두는 법을 배우며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마음의 파도가 높게 일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격해진 기분으로 내뱉는 말들은 대개 나쁜 감정이 섞이기 쉽다. 화와 불안이 뒤섞인 말은 상대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면 입을 닫고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글을 쓰거나 산책을 하며 거친 마음을 충분히 가라앉힌 후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한다. 잠깐 멈추는 기술이 나를 보호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상대를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한 도구로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불안하니까 너는 무조건 대답해야 한다는 생각은 참 이기적이었다. 상대도 힘들고 지쳐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나의 바람만큼 상대가 편히 쉴 권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긴다. 상대의 침묵을 기다려 줄 때, 우리의 관계는 비로소 평등하고 건강해진다. 나는 이제 상대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는 주인이 아니라, 그의 속도를 존중하며 곁에서 함께 걷는 친구가 되려 한다.


내 마음속의 부족함이 나를 자꾸 조급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혹은 잊힐까 봐 두려워서 나는 자꾸만 상대의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사랑은 말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묵묵히 지켜주는 과정에서 사랑은 증명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억지로 확인받으려 애쓰지 않는다.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니, 상대의 작은 반응에 마음이 흔들릴 이유가 사라졌다. 단단해진 마음은 어떤 침묵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이제 이 고요함 속에서 깊은 편안함을 찾는다.


나의 조급함이 사실은 상대를 믿지 못하는 마음에서 나왔음을 인정한다. 상대가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의심이 나를 재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의심으로 억지로 묶어둔 관계는 언젠가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이제 안다. 이제는 의심 대신 믿음을 선택하기로 했다. 상대가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믿으면 그의 답장이 조금 늦는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마음에 믿음이라는 든든한 중심이 생기니 어떤 감정의 파도에도 배가 뒤집히지 않게 되었다. 관계의 평온함은 오직 서로를 향한 깊은 믿음에서 나온다.


불안함이 밀려올 때 내가 하는 연습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물기’다. 발바닥에 닿는 바닥의 느낌, 창밖의 바람 소리, 내 몸의 숨소리에 가만히 집중해 본다. 미래의 결과에 매달리며 상대를 괴롭히던 마음이 지금 비로소 지금의 평화로 돌아온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다면, 상대와의 관계도 결국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임을 믿는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바꾸려던 욕심을 버리고,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최선을 다한다. 마음이 현재에 머물 때, 나를 괴롭히던 조급함은 비로소 힘을 잃는다.


이제 나는 침묵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굳이 말로 채우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만으로 마음이 꽉 차는 순간들을 소중히 여긴다. 조급하게 상대를 뒤쫓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평온함을 누린다. 나의 불안함을 덜려고 상대를 몰아세웠던 어두운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온전한 나로서 상대와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그 어떤 외침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이제는 마음 깊이 느낀다.


이 여정의 끝에서 나는 비로소 평화로운 나 자신을 만난다. 조급함과 불안함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이제는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의 반응에 매달리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괜찮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이런 믿음 덕분에 나는 더 이상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제 서두르지 않는다. 관계가 흘러가는 대로 그 속도를 소중히 여기며 천천히 걸어갈 뿐이다. 비로소 찾아온 이 평온함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나는 이제 고요한 사랑을 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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