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후 한달, 깊은 후회가 나를 잠식했다
퇴사 후 며칠, 꽤 괜찮았다. 약간의 자유와 설렘 기대가 마음속에 가득했다. 회사에서 연결해 준 전직 지원 컨설팅을 받으면서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컨설팅 중 심리 상담을 받는 듯 울고 또 울었다.
기자로 일하면서 워킹맘의 고충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취재한 적이 있다. ( ▶워킹맘의 우당탕탕 출근기)
해당 지역에서 일하는 여성 780명 중 37.7%가 아이 키우면서 직장 생활 못한다는 응답을 한 조사자료를 인용했었는데, 내가 그 사례자 중 한 명이 된 꼴이었다!
'내가 정말 회사를 그만뒀네? 이제 내가 돌아갈 곳은 없구나. 이제 나는 우리 집 소속이구나.'
강산이 변하는 10년 넘게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꽤나 큰 정서적 상실감을 가져왔다.
다들 커리어가 아깝다고 했다. 네 선택이니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는 토닥임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이 말이 듣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너는 누구보다도 잘해냈다." 오직 나의 엄마만이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말에 시어머니는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뭐 할건데?"
정곡을 찔렸다. '뭐 할지 아직 몰라요..'라고 말할 수도 없었던 노릇이었다. 속이 상했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 잘 키워야죠.
누군가 왜 하필 지금 퇴사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때도 지금도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시기에 옆에 단단히 있어주고 싶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원물 식단을 챙겨 먹이고, 배달 음식 대신 건강한 집밥을 해주고, 학원 대신 산과 들에서 뛰어놀게 하고
영어 유치원 대신 내가 영어를 가르치고. 말하자면 '좋은 엄마 프로젝트’는 내 최우선 목표였다.
그런데 퇴사 후 현실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퇴사 후 4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이 계획들을 거의 지키지 못했다. 산으로 들로 뛰어놀기는커녕, 아이들이 기관에 있는 시간은 퇴사 전보다 더 길어졌다.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영어 노출을 해주고 싶었는데 정작 내가 영어 공부를 못하고 있다.
아이에게 해주는 건 영어 영상과 영어 노래를 틀어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회사 안 가?”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회사 가고 아빠가 집에 있으면 좋겠어.”
집에 오래 함께 있으면서 다양한 갈등이 생기다 보니 아이들은 아빠를 선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 나는 회사에서는 일을 믿고 맡길만한 중견 사원이었을지 몰라도, 집에서는 육아와 집안일을 맡은 신입사원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서툴렀다.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는 1월. 나는 퇴사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아니 그전보다 더 헤매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는데, 나는 퇴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 큰 결정을 쉽게 내린 건 아닐까. 곱씹고 또 곱씹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문제는 퇴사가 아니라 기대였다.
아이들이 더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 내가 더 좋은 엄마가 될 거라는 기대... 회사를 다니면서도 못 했던 걸, 단지 회사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넘친 이 '기대'가 문제였다.
이런 기대는 위험하다. 어떤 결과도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첫째가 아들이다.
둘째를 낳고 싶었지만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이 있었다. ‘또 아들이면 어떡하지.’
이 마음으로 아이를 낳는 건 둘째에게도 미안하고 나 자신도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둘째가 아들이어도 괜찮다.” “아들이면 더 좋겠다.” 그 마음이 생길 때까지.
그리고 둘째를 가졌다. 예상대로(?) 또 아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사도 마찬가지였다.
퇴사의 이유가 아이라면, 내가 바꿀 수 없는 결과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내가 커리어까지 포기하면서 너를 돌봤는데 너는 왜 이것밖에 못하니?”
이런 말을 언젠가 하게 될 것 같다면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니다.
내가 이 시기에 아이들을 위해 노력해 보고 싶어서 퇴사한 것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바꿀 수 있다. 루틴을 만들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바꾸는 일은 내 영역이 아니다. 나는 노력할 뿐이고 결과는 아이의 것이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적어도 "나는 해봤다." 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서히 퇴사에 대한 후회의 농도가 옅어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건 꼭 스스로에게 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려고 한다.
그 질문에 모두 대답할 수 있다면, 그대의 퇴사 길은 꽃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