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통해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주말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습니다.
장편소설과 번역, 에세이, 단편소설집, 기고 등으로 1979년 이후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굳건한 팬을 가진 소설가로서 자신의 글쓰기를 직업적인 관점으로 투영하여 담담하게 이야기한 강의체의 에세이입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고(원고지 20매, 대략 5시간 소요), 오후에는 음악 듣고 쉬거나 생활인으로 살며 빼놓지 않고 매일 달리기 1시간을 하는 일정한 패턴을 그는 수십 년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계약으로 강요받는 마감이 없이 스스로 의지가 차올라 무르익었을 때 시작해서 매일 스스로 정한 분량의 글을 써서 완성하는 장편 소설의 초고는 그래서 직장인이 출근해서 하는 일과 거의 유사한 비유가 가능한 수준입니다.
장편 소설을 탈고하고는 중간에 쉴 겸 번역이나 기행문 등의 수필을 쓰거나 호흡이 짧은 단편들을 써서 모이면 책으로 출간하는 등 그가 유지한 수십 년의 인생은 글쓰기를 배열한 규칙 있는 작가로서의 그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의 소설이 모두 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신간이 나오면 큰 호기심으로 어느새 손에 들고 있고 읽어내려가곤 합니다. 그에게 카프카 상을 안겨주며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1Q84도 마음 편하게 읽어내려가기 보다는 약간의 긴장이 필요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늘 특유의 독창적인 문체와 세계관을 유지하며 기대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그의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써지는 지에 대한 호기심을 이 책으로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일부는 큰 실망감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도 그런 우려를 책 내용에 표현해 놓았습니다.
그가 비슷한 예로 영국의 작가 앤서니 트롤로프가 대중에게 외면받았던 사례를 들었습니다.
앤서니 트롤로프(Anthony Trollope:1815~1882)는 일과 시간에는 런던의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면서 고위 관리직에 오를 정도로 완벽한 직장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영국 전역에서 있는 빨간색 우체통도 그가 주관해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랬던 그가 새벽마다 출근 전까지 2시간 30분씩 정해진 시간을 두고 글을 썼다고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는 200자 원고지 스무 장이라는 기준이 있듯이 앤서니 트롤로프는 매일의 창작을 시간으로 엄격하게 관리했던 것입니다.
그는 연이어 출간한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두고도 우체국 직원으로서의 직업을 고집스럽게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글쓰기 패턴과 우체국 관리직이라는 직업이 알려지면서 인기가 뚝 떨어지고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경우와 오버래핑하여 이야기합니다.
독자들 중에는 자신의 글쓰기 패턴에 실망감을 가질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보통 독자들이 기대하는 유명 작가는 일반인들에 비해 비범한 삶을 살거나, 심지어 자기 파괴적으로 고통을 저변으로 하여 창작을 한다는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왠지 자기관리 철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기고백적인 글쓰기 방식을 답습하려고 마음먹은 작가 지망생들이 이 책을 통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워 라벨 등으로 삶 속에 직업, 직업 속에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눈높이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선례가 와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이 책에 소설의 시스템으로 초기부터 고수하던 1인칭 시점을 3인칭 시점으로 바꾸게 된 과정이나 계기, 등장인물의 모델을 실제 인물로 하는지 등, 작가에게 직접 듣지 않는다면 전혀 모를만한 세세한 뒷이야기들을 매우 흥미롭게 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창작활동을 직업에 빗대어 이야기는 했어도, 그 스스로 글쓰기를 통해 자기 정화가 된다고 고백할 만큼 그 과정을 즐겁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재와 노력하는 자가 뛰어난 글을 남길 수 있어도, 즐기는 자만이 그처럼 긴 호흡으로 꾸준하고 오랫동안 멋진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강렬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