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의 미스터리, 그리고 솔즈베리의 마그나 카르타
베드러선 스텝스의 안개 낀 자연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인간이 세운 가장 오래된 돌을 찾아 '솔즈베리 평원'으로 향했습니다. 지평선만 보이는 넓은 들판 위에 덩그러니 놓인 거대한 돌덩이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스톤헨지(Stonehenge)'입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가는길에 스톤헨지 방문객 센터에 들리면 이런 모양이 많이 보입니다. 양의 목을 보시면, 잉글리시 헤리티지 (English Heritage) 표식이 보입니다. 제가 올리는 글들은 주로 다녔던 내셔널 트러스트의 아름다움을 여러분들께 안내하려는데, 다른 곳을 소개하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을 관리하는 곳은 아주 독특합니다.
내셔널 트러스트와 잉글리시 헤리티지 재단이 각각 임무를 나누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잉글리시 헤리티지는 스톤헨지 자체를, 내셔널 트러스트는 주변의 초원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유적이 난개발되지 않고 자연속에 보존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방문자 센터 주변을 돌아보면, 과거의 거주지를 재현해둔 모습들도 보이고, 이러한 거대한 돌을 어떻게 이동했는지도 알아 볼 수 있도록 전시해두었습니다.
다시 발길을 돌려서 스톤헨지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저멀리 보이는 스톤헨지가 서서히 다가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이한 압도감이 느껴졌습니다.
기계 하나 없던 5천 년 전, 사람들은 도대체 왜, 어떻게 이 무거운 돌들을 300km나 떨어진 웨일스에서 이곳까지 옮겨왔을까요?
울타리 너머로 바라본 스톤헨지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저 거친 바람 소리만 거석 사이를 통과할 뿐, 그날의 진실은 영원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오직 '믿음'과 '집념'으로만 설명되는 원초적인 에너지가 그곳에 흘렀습니다.
스톤헨지의 투박한 돌이 주는 의문을 안고,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솔즈베리(Salisbury)'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이 돌로 보여줄 수 있는 정반대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높은 123m의 첨탑을 가진 '솔즈베리 대성당(Salisbury Cathedral)'. 스톤헨지의 돌이 '거칠고 묵직한 힘'이라면, 대성당의 돌은 '섬세하고 날렵한 예술'이었습니다. 무거운 돌을 깎아 마치 레이스처럼 정교하게 조각하고, 그것을 하늘 끝까지 쌓아 올린 이 고딕 양식의 걸작 앞에서 나는 인간의 기술력에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스톤헨지의 사람들이 돌을 세워 태양을 숭배했다면, 중세의 사람들은 돌을 깎아 신의 집을 지었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무언가 영원한 것을 남기려 했던 간절함은 똑같이 닮아 있었습니다.
이 대성당의 챕터 하우스(Chapter House)에는 화려한 건축물보다 더 중요한 인류의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1215년에 작성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 원본입니다.
"자유인은 적법한 판결 없이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는다."
지금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토대가 된 이 낡은 양피지 문서를 보기 위해 어둑한 전시실로 들어갔습니다. 화려한 대성당이나 거대한 스톤헨지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지 모르는 이 종이 한 장이, 사실은 인류의 역사를 가장 크게 바꾼 힘이었습니다.
의사로서 매일 환자의 기록을 남기듯, 역사도 기록됨으로써 비로소 힘을 갖습니다. 거대한 돌은 언젠가 풍화되어 사라지지만, 그 위에 새겨진 '자유'와 '법'이라는 정신은 8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스톤헨지의 거친 돌과 솔즈베리의 정교한 돌, 그리고 마그나 카르타라는 정신의 돌까지. 하루 동안 수천 년의 시간을 넘나든 기분이었습니다.
병원에서의 나는 늘 '지금 당장'의 문제와 씨름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곳 솔즈베리 평원에서 수천 년을 버텨온 돌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나의 고민과 스트레스는 이 유구한 시간 앞에서 얼마나 작은 먼지 같은 것인가.
말없이 서 있는 돌들은 번아웃에 지친 나에게 "조급해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결국 남는다"고 묵직한 위로를 건네는 듯했습니다.마치 성당안의 이 샘물처럼.
Dr. Myong's Travel Tip: 솔즈베리 & 스톤헨지
코스 제안: 스톤헨지(오전) → 솔즈베리 대성당 & 시내 점심(오후)
스톤헨지 (English Heritage): 사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방문객 센터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내셔널 트러스트 회원은 무료입장입니다. 영국 헤리티지의 상징이므로 꼭 가볼 만합니다. (NT 회원은 스톤헨지 인근 주차비가 무료인 경우가 있으니 카드 지참하세요.)
솔즈베리 대성당: 입장: 정해진 입장료 대신 기부금을 권장합니다.
마그나 카르타: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눈으로만 담아오세요.
주차: 시내 주차장을 이용하고 걸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완벽하게 세워진 성당을 뒤로하고, 다음 주는 처참하게 무너져서 더 아름다운 성 (내셔널 트러스트의 주요 장소로 선정되었었습니다.) 으로 떠납니다. 내전의 상처를 간직한 '코프 캐슬'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ps.영국에는 스톤헨지와 유사한 구도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래이크 디스트릭트 (Lake district)의 Castlerigg Stone Circle에 가면 이런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피터래빗을 만나러 가시면, 꼭 작은 스톤핸지도 한번 보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