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파서 집으로 병원으로 뛰어다녔다. 야속하게 꼭 이런다니까. 무언가에 재미 붙이기만 하면, 마치 너의 역할은 '보호자'라고 말해주듯이. 어딜 자유롭냐는 듯이. 네가 무슨 여유냐는 듯이.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엄마의 모든 통증은 진행 중이다. mri 찍고, 물리치료받고, 주사 맞고 약 먹고, 병원을 옮겨도 원인을 제대로 찾는 의사가 없다. 매번 이런 식이다. 원인에 맞는 치료를 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독한 약 때문에 위장에도 탈이 나면 죽 밖에 못 먹고…기력 떨어지고 잠 못 자고 또 다른 증세로 아프고.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항상 이렇게 아픈 모습이었다. 특별히 한 곳이 아픈 게 아니라 연쇄적으로 아팠다. 면역력이 약하게 태어나면 평생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건가. 그러면 가족이라도 한 명 더 만들어주지. 아버지든 형제든. 세상이 다 미웠다.
회사에서는 밥도 먹고 웃기도 했지만, 마음은 늘 지옥에 있었다. 이 감정을 드러내기에 회사는 적합하지 못하다. 친한 동료들이어도 이 고통은 너무나 내 것이었다.
눈뜨고 자기 전까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머리맡에 휴대폰을 두고 작은 소리에도 깼다. 언제 응급실에 가게 될지 두려웠다. 어떤 약속도 잡을 수 없었다. 엄마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야 일상이 손에 잡혔다. 무작정 연차를 낭비할 수도 없었다. 갑자기 수술을 하게 된다거나 입원하게 될 때를 대비해야 했으니.
매일 운동복이 든 가방을 들고 출근하며 오늘은 복싱 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늘 아니었다. 어느 날에는 급하게 반차를 쓰고 달려가야 했다. 운동 가방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던 어느 대낮, 창 밖을 보고 있다가 달려오는 차에 치여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복싱장에 가고 싶다. 땀을 쏟아내고 아무 생각 없이 뛰고 싶었다. 그곳에서는 몸이 힘들어 죽겠다거나 이제 살겠다거나 두 가지 감정 외에는 느낄 수 없으니까. 몸이 힘든 게 무조건 더 나았다. 까맣고 반질반질한 복싱장 바닥이 보고 싶다. 엄마가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
내 오랜 소원 중 하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어디야? 요즘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말을 해보는 거다. 컨디션이 아주 좋아 약속이 많은 엄마 모습을 보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