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탄만두 Jan 22. 2024

결국 사소함이 나를 구할테니

 

숙면이 무엇보다 중요해

엄마가 못 잤다 소리를 하면 심장이 떨어진다. 아뿔싸 또 재발하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한다. 그 정도로 이석증 환자에게 숙면은 중요하다. 매일 [엄마 잘 잤어?] 카톡을 보내며 숨을 죽인다. 그의 컨디션을 듣고 나의 하루도 결정되니까. 퇴근하고 약속엔 갈 수 있는지 집으로 달려가야 하는 건 아닌지. 주말엔 눈뜨자마자 전화를 하고 당락을 기다린다. 


내 잠을 대신 줄 수만 있다면

애석하게도 엄마에게서는 [아니 잘 못 잤어]라는 답장이 더 많았다. 기질적으로 잠에 예민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새벽녘 세차게 부는 바람이나 빗소리에도 깨는 날들이 있었다. 스트레스에 밤을 새우고는 했다. 그러다 잘 자는 날이 며칠이라도 유지되면 컨디션이 곧장 올라가는 게 눈에 보였다. 정말로 눈에 보였다. 나는 됐으니 제발 엄마가 푹 자게 해 주세요. 매일 밤 기도한다.


김치와의 이별

귀 먹먹함(이충만감)을 치료하려고 여러 가지 시도해 보다 얻은 것도 있다. 계속 재발하는 귀 때문에 답답했던 엄마는 극단적으로 김치도 먹지 않았다. 병원에서 저염식을 빡세게 해 보라고 해서다. 어느 날엔 밥을 먹다 울기도 했다. 김치 한 조각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처지가 서러워겠지. 그렇게 3개월쯤 지나자 엄마도 적응을 하고,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나아지고 면역력도 좋아졌었다. 외식을 하거나 사 먹는 반찬을 일주일 이상 먹으면 바로 티가 났기에 우리는 저염식이 효과를 봤다 생각 중이다. 지금은 무염까지는 아니지만 김치는 정말 소량만 섭취한다. 모든 국과 반찬은 심심하게 간을 한다. 나는 농담 삼아 장수마을 밥상이라고 부르고는 하는데, 건강에는 좋을지 몰라도 도파민이 나올 것 같진 않아.





귀를 지켜라

겨울철 귀마개 없이 외출하면 이석증이 악화된다. 녀석은 온도에 민감한 듯했다. 그렇다고 여름에 재발 안 하는 것도 아닙니다만. 확실한 건 추우면 혈액순환이 더디게 되어 좋지 않았다. (이석증 환자에게 처방되는 약 중에 혈액순환제도 늘 기본으로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올해는 인스타 광고로 골프용 귀마개를 봤다. 마스크랑 귀마개가 붙어있어 엄청 편해 보였다. 당장 주문을 했다. 다행히 엄마도 유용하다며 좋아했다. 추운 날 귀를 지킬 수 있는 아이템이 늘어 조금은 든든했다.


귀마개 하나, 김치 한 점, 물 한잔, 엄마를 스치고 가는 모든 것들을 분석하는 일이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간절하면 미치게 사소한 것들에게도 기대게 된다. 


수시로 엄마에게 연락을 한다. 엄마 좀 어때 뭐를 먹으니 좋았어 어떻게 하니 별로였어? 데이터를 모은다. 검색을 하고 무언가를 구매하거나 병원을 예약한다. 


결국 나를 들었다 놓는 것들은 한 끗 차이라는 걸 깨닫는다. 사는 게 진흙탕 같아도 발을 구르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 결국 보잘 것 없는 사소함들이 나를 구할테니.




이전 02화 괜찮냐는 질문이 안 괜찮은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