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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Dec 31. 2023

괜찮냐는 질문이 안 괜찮은 이유


 엄마는 좀 괜찮으셔?라는 질문을 들으면 이제는 화가 난다.


악의 없는 순수한 안부일 뿐인데. 울컥하는 건 되풀이되는 상황에 지쳐 대답을 잃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나에게도 처음은 있었겠지. 그 하루는 짧은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지럼증이 시작된 엄마의 전화를 받는 순간 내 앞에 있던 사람들. 나와의 약속이 되어있던 어떤 이들. 소개팅 당일, 오랜만에 만난 친구. 주말 출근과 회의실. 기쁜 마음으로 출발했던 여행지에서 되돌아오던 차 안의 무거운 공기와 침묵. 이런 순간이 수년간 반복되며 나는 '대답'을 잃었다. 마음이 지옥이어도 내뱉을 수 있는 '대사'를 할 뿐이다. 


오늘은 일단락되었다고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일단락 [一段落]
일의 한 단계를 끝냄
-
지금 난 몇 단계에 있는 건가요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는 아무도 몰라. 하루만 못 자도 폭탄은 다시 터질 테니까. 어제의 응급상황을 일단락시켰을 뿐, 오늘밤 못 자면 내일은 다시 응급이 되는 걸.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그 병은.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인 나의 생에도 달라붙어있다. 결혼식 날짜와 신혼여행 일정을 정할 때에도 어지럽지 않은 날은 언제일까를 우선에 두었다. 여행을 가도 엄마의 컨디션을 확인해야 풍경이 보이고 음식 맛이 느껴졌다. 내 인생이 온전한 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날이 쌓여갔다.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 안 받아야 좋아지는 병이라니. 약으로도 주사로도 각종 민간요법으로도 재발을 막을 수 없다니. 영원한 완치가 없다니. 수소문해 이병원 저 병원 다녀봐도 하는 말은 거기서 거기였다.  


평생 동반자처럼 잘 관리해야 하는 관리병. 환자분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재발해도 그러려니 하세요. 마음을 비우세요. 이석증과 메니에르 환자들이 우울증을 1+1처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나의 멍울을 뒤로 한채 엄마의 스트레스 관리만을 일 순위에 두었다. 아프다는 이유로 충분히 죄인이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엄마였다. 가끔은 못된 엄마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원망 할 수 있었을까. 


뇌 mri를 찍고 입원한 엄마를 보며 미안해하지 말라고 자식이 하지 누가하냐고 가장 잘하는 연기를 했다. 공휴일 응급실과 이틀의 입원. 뇌 MRI와 CT는 다 정상. 역시나 귓속 그놈이 원인이었다. 병원비는 80만 원.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괜찮다 말고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어. 



엄마는 괜찮으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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