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한가운데 있다. 한번 올라간 감정은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내 설거지로 분을 풀었다. 박박 닦아 신경질적으로 접시를 내려놓았다.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러니까 생사를 다투지 않아 별거 아니라는 반복된 이 상황에 고함 한번 내지 않고 잠겨가고 있었다.
환절기에 문을 여는 엄마의 병세. 남들에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감기.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 그 하찮은 바이러스가 또다시 나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감기는 한 달 전쯤 시작됐고, 항생제 2포에 장들이 또 무너졌고 그렇게 무너진 자율신경은 이석증을 한 달간 두 번이나 재발시켰다.
나는 만삭의 임산부였고 엄마도 최대한 나의 신경을 안 쓰이게 하려는 듯했으나, 유일한 혈연이자 피붙이인 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딸 이 약을 먹으니까 배가 더 아파. 나 어느 병원으로 가야 돼?' '딸 이석증이 이탈했어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이 약 중에 어떤 약 때문에 잠 못 자는 건지 알아봐 줄래?', '딸 전화 좀 줄래?' 이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엄마는 어디에 물어봤을까. 이 파도 앞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감기부터 위장, 장을 지나 다시 귀. 그리고 다시 심해지는 감기. 약을 쓸 수 없는 몸. 주사를 맞을 수 없는 혈관. 다시 약해지는 모든 신경계와 면역. 철마다 나를 휩쓸고 가는 파도 같은 것. 막을 준비를 하고 중무장을 해봐도 어김없이 나를 쓸고 가 버리고 마는 것. 끝내 생채기를 내고 흉터를 남기는 것.
정말로 힘든 것은 엄마인가 나인가. 나에게도 왜 통증이 전이되는가. 나는 바다로 들어간다.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는 깜깜한 바닷속에 잠식되어 간다. '이건 나의 일이야.' '아무도 이 일을 나만큼 해결할 수 없어.'
발이 닿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대로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뱃속에 아이를 품고 나니 더는 그런 생각은 할 수도 없게 됐다. 끝없이 밀려들어오는 물결 앞에서 어쩔 도리없이 당하고 마는 것이다.
눈을 감고 오랫동안 물줄기를 맞았다. 오랜 시간 샤워를 하고 나와 꼼꼼히 로션을 발랐다. 이제는 정말 터질 것 같은 배를 움켜쥐며 '아가야, 엄마는 또 잘 이겨낼게' 품 안의 것에게 의지를 했다.
창문을 열어 찬바람을 마셨다. 코 안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를 힘껏 마셨다. 나는 이 파도 위에 올라서야만 한다. 원망이 마구 차오르다가도 이내 초연해진다. 누굴 원망할 것이며 대체 누구에게 빌 것인가. 어차피 다 내 것인데.
'왜 이렇게 태어나서', '나를 왜 낳았을까'라는 엄마의 울음 섞인 물음 앞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예전에야 '엄마 왜 그런 말을 해. 다 좋아질 거야.', '다 지나갈 거야' 따위의 위로를 하며 감정쓰레기통도 자처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다. 그녀의 감정이 나에게로 달라붙는 걸 막고 싶었다.
내가 없다면 엄마는 더 강해질까 약해질까. 철마다 죽고 싶다는 엄마에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수많은 어린 나를 떠올린다. 있잖아 사실은 엄마, 그런 말은 자식한테 하는 게 아니래.
부치치 못할 편지를 쓴다. 파도에 쓸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