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엄마 이 항생제 먹어도 되는지 좀 찾아줄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은 이런 전화를 받아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수년간 나는, 엄마의 이런 전화를 받으면 땀이 나고 불안하고 호흡이 가빠졌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 채로 발을 동동거렸다. 눈과 손은 바쁘게 검색을 하고 택시를 부를 병원을 찾았다. 늘 그랬듯이 또 시작이구나 싶어서.
그러나 출산을 50여 일 정도 앞두자 뭔가 달라졌다. 엄마의 아픔이 내 인생을 빼앗지 못하고 있다. 이건 엄마의 변화일까 나의 변화일까.
"엄마 미안한데, 나 어제 무리했더니 코피가 나서 오늘은 병원 같이 못 갈 것 같아."라는 말을 뱉고 쉴 수 있게 됐다. 엄마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잠은 잘 수 없었지만, 예전처럼 죄책감에 몸을 뒤척이지는 않았다. 분명 이런 경우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숨이 막힐 듯 불안했는데. 그런 순간들이 내내 괴롭기만 했는데.
내가 무뎌진 건지 엄마가 이전보다 덜 아픈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달라졌다. 뱃속 아기가 중심이 되고 엄마는 자연스럽게 바깥에 서게 된 건지. 그렇다면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이 변화가 성장인지 도망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엄마의 하나뿐인 보호자는 나지만 다른 커다란 책임 앞에 중심이 옮겨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스스로를 꽤 미워했을 선택 앞에서 '어쩔 수 없지 아기가 더 우선인 걸.'이라는 말을 내뱉고는 한다.
도대체 자식은 어떤 존재이기에 뱃속에서부터 나를 이렇게 변화시키는 걸까. 아기가 태어나면 보호자로서 나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게 되는 것일까.
그동안 나를 묶어둔 죄책감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딸에서 엄마로 진화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조용해서 더 낯설다. 어쩌면 나는 처음으로 보호자인 나를 덜 미워하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답을 모르지만
적어도
예전만큼 나를 때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건
앞으로도 평생 보호자일 나에게
꽤나 중요한 변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