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인 내게 효녀 소리가 쏟아진다.
"아유 딸이 효녀네요~"
이번에는 간호사다.
"제가 원래 보호자분 절대 가라고 안 하는데요,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요.
어머님 나이도 젊으시고 하니까
보호자분 귀가하시는 게 어떠세요?"
의아하다.
아니 정확하게 무슨 감정이냐면
억울하고 답답하다.
뭐라는 거야, 다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효녀가 아니야.
유난히 효녀 소리가 듣기 싫은 날이었다.
엄마의 백내장 수술 보호자로
7개월 임산부인
내가 동행을 했던 날이다.
같은 날 수술하는 엄마의 수술동기는
82세 여성, 83세 남성이었다.
그래서 간호사는
65세인 엄마를 젊다고 표현했다.
엄마가 젊으니까
이 정도 수술 회복쯤은 혼자 할 수 있으니
임산부는 집에 가라고.
그러면서 나를 효녀라 불렀다.
나는 그냥 생존 중이다.
어떻게든
엄마에게 약물 부작용이 없도록
지켜보고, 조치해야 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야 내가 산다.
아니나 다를까
항생제 테스트 하면서
엄마만 부작용이 올라왔다.
83세 아저씨는
이런 간단한 수술도
병원 입원도 처음이라
환자복을 처음 입어본다고 했다.
그의 당연한 건강함이 부러웠다.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어쩌면 내 피해의식이기도 했다.
젊으니까 집에가라고?
저기 저 80대 두 분은
아무렇지도 않은
이 주삿바늘 하나부터 문제인데.
항생제가 들어가고 5초 만에
팔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부어오르는데
집에 어떻게 가.
이미
쓰면 안 되는 항생제를 피해
다른 약을 골라 넣은 뒤였다.
이 병실에서
보호자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이 약한 여성이다.
우리 엄마는
65년간 쉬지 않고 아팠다.
83년 만에 입원을 해본다는
아저씨의 말에
나는 그냥 맞았다.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았는데
그냥 내가 맞았다.
83년 동안
병원이나 약을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기분은 뭘까.
엄마의 남은 여생동안
그런 기적은
끝내 오지 않는 걸까.
임산부인 나를 더 배려하는 시선과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엄마,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정.
이 간극 사이에서
나는 계속 답답했다.
소수에 속한 사람만이 느끼는
이상한 패배감에 기분이 더러웠다.
그날은
누구를 미워하기에도
나 자신을 달래기에도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보호자 침대에 누워
뭉친 배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아가야.
나는 너에게
건강한 엄마가 되어줄게.
이런 고민만큼은
너의 생에 없도록
약속할게.
오늘을 건너며
칭찬처럼 던져진 말 때문에
설명하지 못한 삶을 삼킨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