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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by 탄만두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심지어 딸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그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가.


의무감, 애증, 책임감, 불안, 고마움, 사랑?

어떤 단어도 썩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내가 딸의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엄마와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쓰게 할지 궁금했다.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것을 꺼내보기 위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녹색 어머니

운동회

무슨 부녀회장

90년대 특유의 립라인과 입술색

묶은 머리

목에 검정색 털이 달린 자켓

종종 안경을 쓰던 엄마

엄마의 삐삐




삐삐사진.png




이상하다.

초등학교때 엄마가 학교에 오면 좋았던 기억도 잠깐 있는 것 같고

상장을 타가면 무척이나 좋아했던

얼굴도 스치지만

전부 희미하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내게

우주에서 가장 약한 존재였다.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서 병원을 데려가야 하는 내 환자. 내 신생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이 없는 존재.


엄마의 30대는 강인했을까?

분명히 그녀가 나를 지켰던 때가 있었을 텐데

이렇게 새카맣게 잊고서는

내가 다 해먹은 양, 내가 해준 것만 기억하고 사나보다.


봄에 태어날 나의 딸을 기다리며

아기라는 존재를,

1인분을 하게 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감히 짐작한다.


나도 그렇게 그녀가

먹이고 입히고 씻겨내 자랐을 텐데.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항상 약하기만 했다.


그게 진짜 엄마였을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봤던걸까?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기억만 남겨둔 건 아닐까.


병원에서 찍어온 초음파 영상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저 작은 점이었을때, 젤리곰이었을때,

첫 태동을 보내던 그 순간

나의 어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내 아이의 첫 태동을 느낀 후

엄마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아주 행복했다고 했다.

비록 그녀를 둘러싸고있는 현실은 녹록치 않았으나

태동이 주는 기쁨은

그녀에게도 있었던 모양이다.


기억은 참 이상하다.
강했던 순간보다 흔들리던 순간을 더 오래 붙잡는다.


내가 태어났던 그 시절, 엄마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아마 나처럼 울렁거리고, 나처럼 두려워하고,

나처럼 '엄마가 맞나'스스로 묻기도 했을 것이다.



갈림길.png



그리고 나는 지금

그녀가 지나온 길 위에 서 있다.


기억하지 못한 장면들을

내 몸으로 하나씩 다시 배우는 중이다.


어쩌면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 쓰는 일은

그녀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이제서야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을 건너며

나는 내 딸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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