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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인터뷰를 시작하는 법

by 탄만두


[녹음기를 켜는 소리]

보호자 (익명 처리된 이름), 돌봄 19년 차.

인터뷰는 식탁에서 진행됐다. 그 식탁은 늘 병원 영수증과 약봉투가 뒤섞여 있다.





Q. 누가 당신을 '고생 많다'라고 할 때, 진심으로 위로가 되던가요?

아니요. 위로가 되지 않아요. 고생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웃음) 특히 돌봄은 외로운 싸움이라, 내 고생을 누군가 알아주는 게 고마운 듯싶다가도, 애초에 이런 고생할 일이 안 생겼으면 어땠을까 라는 마음이 공존하죠. 저 말을 안 듣고 싶다는 감정이 더 커요.


Q. 병원 대기실에서 무슨 생각을 제일 자주 하나요?

의사, 간호사 선생님께 상황을 전달하거나, 환자 통증이 진행 중일 때는 스마트폰으로 분주하게 무언갈 검색하고 있어요. 뭘 알아봐야 하니까. 그런 순간이 파도처럼 지나가고, 링거를 맞고 있는 환자를 기다려야 할 때. 그때는 병원 바닥을 봐요. 정확히는 제가 신고 있는 신발을 보고 있어요. 손톱을 보기도 하고 뇌를 비우려고 노력합니다. 매 순간마다 감정을 오롯이 쏟으면 저도 에너지가 바닥나기 때문이에요.


Q. 가장 자주 하는 거짓말은 뭔가요? (예: "나 괜찮아", "이제 괜찮을 거야')

아무래도 환자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호전이 있을 테니, 긍정 과장을 좀 합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를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거죠. "내가 좀 찾아봤는데,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더니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다 나았대", "좋게 생각해서 완치가 됐대", "하루에 햇빛을 1시간씩 보고 억지로 걷고 억지로라도 웃었더니 재발을 안 했대" 이런 거짓말이죠.


Q. 돌봄이 길어지면서, 달라진 건 사람인가요 상황인가요?

사람이죠. 상황은 음.. 요즘 달라진 건, 챗지피티 덕분에 검색 시간이 줄었다는 정도죠. 시간 단축은 중요하니까 그 점에서는 도움이 많이 돼요. 그래도 상황이냐 사람이냐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사람인 것 같아요. 환자는 반복되는 상황에 지쳐서 쉽게 우울해지고요. 보호자는 직면과 회피 양가감정 속에서 외줄을 타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돌봄 초기에는 전혀 안 했어요.


Q. 가끔은 아무 일도 없는 날이 더 불안하진 않나요?

정확해요. 아무 일도 없는 날이면 불안합니다. 일상의 고요 속의 평화가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감각이 늘 살아있고, 그걸 애써 외면하려고 노력하죠. 아무 일도 없는 날의 공포, 이걸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Q. 돌봄 중에 ‘나는 여기 왜 있지?’라는 생각이 든 적 있나요?

있어요.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고 문득 떠올려요. 이제는 처음이 희미해져 가고요. 분명 저에게도 처음 보호자역할을 했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가끔은 전생에 갚을 게 많았나 보다 생각해요 (웃음). 다 갚고 난다면 반드시 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요.


Q. 스스로를 다독일 때, 어떤 말이 가장 자주 떠오르나요?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인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입니다. 벌어진 상황을 대비하고 싶어서, 여러 걱정을 당겨서 하는 편이었거든요? 근데 결혼 후 배우자 성향을 따라 변한 것 같기도 한데요. 어차피 엎질러진 물. 미리 두세 배로 힘들어하지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바뀌더라고요. 그 순간에 겪을 고통만 딱 직면하고, 다음 미션은 다음에 쳐내자. 이렇게 바뀌었어요. 둘 다 해보니 이쪽이 훨씬 낫다 싶어요.


Q.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음.. 당일 여행이요. 무계획으로 충동적으로 갑작스레 떠나는 여행이 가장 해보고 싶습니다. 그냥 여권 하나만 들고 공항 가는 것도 좋고, 국내라도 숙소 예약 없이 훌쩍 기차에 몸을 싣는 그런 거요.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언제 돌아올지 정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이 가장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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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녹음기를 껐다.


방 안이 조용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다.


어쩌면 보호자로서 살아간다는 건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 아닐까.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며 생각했다.

내일도 이 식탁에서, 나는 나에게 말을 걸겠지.


언젠가 이 긴 인터뷰가 끝나면

그때의 나는 훌쩍 여행을 떠나며 오늘의 나에게 고맙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오늘을 건너며

오늘 당신은 어떤 질문 앞에 잠시 멈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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