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내 삶은 분명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거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까?
돌봄이 내게 준 건 무엇일까?
나의 10대
"나 엄마 때문에 집에 일찍 가봐야 해"
"나 엄마 때문에 여행 못 가"
"나 엄마 때문에 이거 못 해"
나의 20대
"엄마가 아프셔서요, 혹시 반차 가능할까요?"
"엄마가 아프셔서요, 지금 응급실입니다"
"엄마가 새벽에 아프셔서..내일 출근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의 30대
"엄마 안 아픈 날로 해야 해"
"엄마 안 아프면 하자"
"엄마 안 아프면 가자"
엄마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런 말을 살면서 몇 번이나 했을까. 형제가 있었다거나, 제대로 된 아버지가 있었다면. 내 성격은 달라졌을까? 지금의 나는 누가 만든 걸까. 내 모습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받으면, 내 대답은 늘 같다.
절대 안 간다.
인생을 다시 살아낼 기회보다
아는 맛의 괴로움을 겪을 자신이 없어서다.
엄마랑 단 둘이 곰팡이 핀 지하방에서 살았던 기억들. 화장실이 대문 밖에 있어서 겨울에 화장실에 가기 싫어했던 기억. 한 밤중에 도둑이 든 기억. 습하고 쿰쿰한 지하에서 지낼수록 엄마의 면역력은 더 떨어졌지만 10대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그냥 나이키 운동화라던지 두꺼운 패딩이라던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을 내색하지 않고 씩씩한 척 지내는 것 밖에는. 센 척을 하며 지냈다. 마치 가난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게 내 자존심인 양.
월급을 받고 생활비를 책임지게 되고 나서부터 비로소 내 삶에 색이 입혀졌다. 20살부터 26살까지는 야근을 아주 많이 하고, 야간대학교로 뛰어다닌 기억들이 많다. 힘든 줄 모르고 재미있게 살았다. 내가 제대로 된 돈을 번다는 게 중요했다. 엄마가 아프면 언제든 응급실에 가서 결제할 수 있는 신용카드를 만들었다는 게 든든했다. 내가 번 돈, 내 회사, 내 학위, 처음 해보는 모든 경험들에 힘들지만 틈틈이 행복해했다.
그리고 지금 30대 중반. 사실 제대로 된 내 인생은 30대부터가 아닐까 싶다. 엄마는 6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더 자주 아프지만, 이미 엄마의 만성질환에 각종 경험치로 단련된 나와, 그런 나를 지지하고 아껴주는 남편이 있다는 게. 낯설기도 하고 고맙고 미안하고. 이 길을 걷는 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희망에 차게 하는지. 그럼에도 주저앉지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는 법을 배운 30대를 지나고 있다.
돌봄이 내게 준 건 뭘까?
기댈 곳이 없었기에 남들보다 빨리 어른이 됐다. 지나고 보니 그 점이 사회 생활력을 만렙으로 끌어올렸고, 덕분에 좋은 동료와 선후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임, 희생, 서운함, 죄책감 같은 복잡한 감정을 겪으며 '어쩔 수 없으면 그냥 하자'라는 태도가 몸에 배었고, 그게 어떤 회사에서도 '일잘러'로 통하는 지름길이 됐다.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인간으로 자라났다. 커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만큼 자아 성찰을 많이 하지 않았다. 나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나의 약점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이런 질문들을 즐겼다. 심리테스트와 MBTI도 좋아했다. 결국 그건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다. 약한 동물이 눈치가 빠른 것처럼, 그렇게 길러진 예민함으로 나는 글을 쓰고,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닿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잃었고 동시에 얻었다.
당신도 잃은 만큼, 분명히 무언가를 얻을 것이다.
오늘을 건너며
삶에서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새로 얻은 게 있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