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반복된다.
하지만 그 반복 안에서 달라지는 건,
내가 다르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변수는 잘 찾아오는 걸까. 엄마의 만성질환도, 임신한 내 몸도, 늘 예측을 벗어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혼란 속에서 나는 매번 작은 규칙을 배운다. 변수는 날 흔들면서 동시에 길들이고 있었다.
저녁 시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같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이제 익숙한 듯 TV 볼륨을 줄였고, 나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엄마, 왜! 귀어지러워? 어디 아파?"
"아니, 그게 아니고 물어볼 게 있어서"
아니라는 말에 안도했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알았다. 썩 좋은 소식은 아니라는 걸.
어제, 나는 입덧 때문에 집에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불고기 쌈밥을 시켜 먹었는데, 엄마가 한 공기를 싹 비우는 모습이 흐뭇했다. 그런데 하루 뒤, 메니에르가 재발했다. 국도 안 먹고, 된장도 안 찍었는데. 김치도 안 먹었는데. 그놈의 귀는 치사스러울 정도로 예민했다. 순간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괜히 시켜줬어. 어제 엄마가 오랜만에 맛있다며 웃던 모습이 떠오르고, 내 잘못 같아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곧 다가올 추석 명절이 떠올랐다. 보통은 기다려지는 시간이지만, 만성질환 환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병원 문이 닫히는 긴 연휴는 언제나 불안하다. 예전에 수없이 응급실로 달려가던 빨간 날들이, 자동으로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명절의 풍경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차가운 병원 불빛이었다.
통화를 마치고 나는 엄마에게 몇 가지를 정리해 카톡을 보냈다. 평상시 알고 있는 습관이더라도 '나는 대체 왜 이럴까' 하는 엄마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메니에르 증상 완화 생활습관>
1. 물 마시는 습관
한 번에 많이 X → 나눠서 조금씩 O
목표는 체액 균형이지 많이 마셔서 소변으로 빼는 것 아님
※너무 많이 마시면 오히려 내림프액 늘어남
2. 나트륨 관리
짠 음식 먹는 순간 바로 림프액이 늘어남.
먹더라도 분산해서 소량만 (내일부터는 전부 중단)
3. 휴식&자세
증상 있을 때 : 머리를 약간 높이고 반쯤 기대듯이 눕기 (배게 2개정도)
※ 갑자기 눕거나, 고개 돌리는 건 어지럼증 유발하니 천천히 움직이기!!
4. 스트레스&수면 (가장 중요★)
스트레스 = 교감신경 흥분 → 귀 혈류 & 체액조절 깨짐
규칙적 수면 (매일 같은 시간 자고 일어나기)
<호흡 진정법>
1. 코로 천천히 4초 들이마시고
2. 2초 멈춘 뒤
3. 입으로 6초 길게 내쉬기
(단순해 보여도, 부교감신경을 켜는 가장빠른방법)
※ 재발할까 불안해서 받는 스트레스 → 실제로 재발을 촉발시킴
※ "아 또 시작이야" 공포감보다는 "휴식 취하면 가라앉는다"는 경험을 몸에 학습시켜야 함
엄마에게 카톡을 보내고 다시 전화를 걸어 설명한다. 마음을 다독여주고 헤아려준다. 그건 어쩌면 과거의 반복된 유산걱정으로 불안했던 나 자신한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나도 오늘 이랬는데, 내 불안함이 오히려 아기한테 역효과가 난다고 하니까 억지로라도 걱정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지냈어. 그러니까 엄마도 억지로라도 해.
"엄마, 우리는 이미
이 상황을 여러 번 겪었고
해결법을 알고 있어.
내가 엄마집 3분 거리에 살고 있고
언제든지 병원으로 달려갈 차도 있어.
자꾸만 재발하는 귀가 짜증 나겠지만
우리는 이 길을 또 잘 통과해야만 해"
이 말을 하고 나니 이상하게 내 마음이 안정됐다. 그래, 나는 이 길을 또 통과해야만 한다. 내가 달라졌다는 게 좋았다. 이전 임신에서도 엄마의 이석증으로 응급실에 있었지만, 그때는 원망이 다소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울음을 참는 순간이 많았고 마음이 많이 괴로웠고 뱃속 아기한테도 미안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뭐 또 그러면 병원에 가지 뭐. 글감 하나 얻지 뭐.
엄마의 귀는 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내 마음은 점점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단단해진 마음을 붙잡고 뱃속 아기에게도 엄마는 강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혼잣말을 했다.
방에서 전화를 끊고 나오자 남편이 나를 다독인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남편에게 "일상인데 뭐, 이 정도로"라며 센 척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엄마도 지키고 우리 아기도 지킬 거야.
귓속 시한폭탄아 터질 테면 터지렴. 나는 다시 일어날 테니까.
오늘을 건너며
누군가를 다독이다가, 나를 다독인 적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