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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 방울이 삶을 뒤흔들 때

만성질환과 함께 사는 법

by 탄만두




비가 내리는 순간, 나는 재발을 예감한다.
천둥과 빗줄기가 창을 두드리면
평범한 하루는 단숨에 낯설어지고 만다.










창 밖으로 비가 어찌나 세차게 오는지

창을 뒤덮은 빗줄기가 온통 흰색이다.


누군가는 비 오면 감성에 젖는다고 하지만,

나는 빗소리와 함께 엄마의 어지럼증을 예감한다.


잠, 소금, 그리고 날씨.

이석증을 다시 불러내는 세 가지 주문 중

날씨만큼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거기에 또 하나,

머리의 갑작스러운 움직임도 재발을 불러온다.


고개를 갑자기 숙이거나 드는

사소한 동작조차 위험하다.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낼 때,

커튼을 다시 달 때,

소파 밑으로 건전지가 굴러간다던지,

나는 본능처럼 외친다.


"엄마, 고개 들지 마!!"
"엄마, 고개 숙이지 마!!!"


그리고는 곧바로 말한다.
"내가 할게"








[여러분들, 날씨 영향 많이 받으시나요?]

[습해지고 더워지니 더 심해지네요]

[비 오는날 너무 싫어요]

[비 오는날 귀, 더 먹먹하신가요?]

[날씨 오락가락하니 미치겠네요]


이석증 환자 카페에 자주 올라오는 질문들이다.

환자들은 저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말을 한다.

날씨는 '적'이라고.


비 오는 날, 흐린 날, 덥고 습한 날, 갑자기 추워진 날..

이래도 영향을 받고, 저래도 영향을 받는다.

그나마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기압이 낮은 날'이라는 것.


하지만 아주 더운 날, 아주 추운 날에도 재발은 찾아온다.


날씨의 변화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환자인 엄마와, 보호자인 나의 일상을

순식간에 바꿔 놓는 적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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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질환과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장마철 일기예보를 보며 사람들은 출근길을 걱정하지만,

나는 엄마가 오늘 밤은 무사히 잠들 수 있기를 바란다.


잠, 소금, 날씨.

세 가지가 동시에 어긋난다면

재발 확률은 급격히 올라간다.


며칠간 잠을 설친 데다 김치를 몇 번 먹었는데

비까지 내내 온다면,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소금이 많은 음식은 어지럼증을 더 쉽게 불러낸다.

김치 한 젓가락을 앞에 두고,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물에 데친 야채를 초장에 살짝 찍어

김치 대신 집어 먹던 날

엄마는 삶이 조금 버거워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래도 김치를 끊고 나서

재발하는 빈도수가 확실히 줄어들었고,

엄마는 여전히 김치를 참고 산다.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조금은 덜 서러웠으려나.


하지만 이렇게 음식을 조심해도,

잠이 부족하거나 날씨가 나쁘면

어지럼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결국 세 가지 중 하나라도 흔들리면 위험하고,

모두 겹쳐 버리면 재발은 더 빨리 온다.


-



의학적으로도 '날씨와 어지럼증'의 관계는

여전히 연구 중이다.


메니에르병 환자들의 경우,

기압이 낮아지면 내이(속귀)의

압력 균형이 흔들리며 발작이 잦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이석증은 아직까지

기압 변화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

환자들의 경험과 통계적 추론만 있을 뿐이다.

결국 이석증은 원인을 단정 지을 수 없는 질환이다.


어떤 병원에서도

"이게 원인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영향을 줄 수 있고

그 복잡한 변수들이 얽히고 섞여

지금의 만성질환을 만들어낸다.


뭐. 어차피 엄마는

메니에르, 이석증, 이명 다 가지고 있으니


나는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 다 떨어뜨린

나무꾼의 심정이랄까.




/


그래도 숲을 걸어 나가는 길에

"껄껄, 참 잘 버텼다"라는 말을

언젠가 누군가 해주길 바라며 오늘도 빗길을 걷는다.


어쩌면 그 말은,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보호자와 환자들이 이미 서로에게

마음속으로 건네고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비가 그치면 잠시나마 햇살이 드는 것처럼,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만성질환의 나날 속에서도

분명 우리에겐 숨을 고를 작은 틈이 찾아온다.


그 틈을 버티고 또 버텨

서로의 하루를 지켜낸다면,

그건 아마 우리만 아는

가장 큰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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