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이 온다는 것은 정말로 커다란 하나의 세계가 오는 것과 같다. 방을 비우고 안 쓰는 물건들을 버리고 채워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직도 '이런 내가 엄마가 될 수 있다고?'라는 혼잣말을 내뱉고는 한다.
정리의 달인 엄마가 도와주어 일은 착착 진행되고는 있지만,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마음 한편에는 이런 불안이 피어나기도 했다.
신생아와 엄마가 동시에 아프면 어떡하지.
남편이 일 때문에 집에 없는 날이라면 나는 얼마나 침착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자 답 없는 질문들이라,
이내 고개를 저으며 버릴 물건 하나를 집는다.
"엄마, 이거 필요할까?"
내가 한참을 고민하는 동안 엄마는 망설임 없이 답을 낸다.
엄마는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거의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그래도 혹시...'를 말하는 사이, 엄마는 이미 다음 상자를 열고 있다.
그 행동에 거침이 없고 이유가 명확하다.
나를 홀로 키우며 지나온 세월의 경력은 강력한 거였다.
"엄마, 이런 거 혼자 어떻게 했어?"
그녀가 살아온 삶이 문득 존경스럽고 또 안쓰럽다.
가장 든든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한 존재.
나의 엄마.
아직은 아기방이라 부르기엔 어정쩡하다. 한쪽에는 비어 있는 서랍장, 다른 한쪽에는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상자들. 방은 이미 아이를 맡을 준비를 하는데, 마음은 아직 입구에 서 있는 기분이다. 내가 비로소 엄마가 되면 그녀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요즘은 이런저런 생각들과 호르몬의 영향인지 자주 악몽을 꾼다. 그러다 어느 날은 태동이 너무 심해 잠에서 깨기도 했다. 아기가 나를 깨워준 건지, 자기도 스트레스받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순간은 고마웠다.
이제 남은 시간은 두 달. 아기가 태어나면 지금보다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배우게 되겠지. 태동이 지나간 뒤의 밤은 유난히 조용했고, 집 안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방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방을 지나치며 생각한다.
한 생명이 오는 일은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방 하나를 남겨둔 채로도
마음을 크게 흔드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을 건너며
버릴 것과 남길 것, 어떤 기준으로 정하게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