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사라진 실전에서 배운, 진짜 사업가의 태도

타이틀(Title)을 떼어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브랜드 디렉터 한


조직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종종 거대한 착각에 빠진다.


미팅룸에 들어설 때 상대방이 보여주는 호의, 협력사들이 보내오는 정중한 이메일, 그리고 업계에서 내게 쏟아지는 찬사들. 그 달콤한 대우가 온전히 '나의 실력' 때문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수백억 매출을 내던 안정적인 브랜드를 뒤로하고, 오롯이 내 이름 석 자만 남은 '0(제로)'의 실전 필드로 나왔을 때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동안 나를 향해 깔렸던 레드카펫은 내 실력이 아니라, 내 명함에 박혀 있던 '회사의 로고'를 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함이 사라진 진짜 실전. 그곳에서 다음 스텝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나는 수많은 창업자, C레벨 리더, 그리고 각자의 브랜드를 일군 진짜 '사업가'들과 커피챗을 가졌다. 타이틀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진 그들과 마주 앉아 대화하며, 나는 진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의 '압도적인 태도' 3가지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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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꾼들은 '숫자' 너머의 '문제 해결 과정'에 열광한다


안락한 회의실에서는 그럴싸한 기획서와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이 힘을 갖는다. 하지만 실전에서 살아남은 창업자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그들의 질문은 표면적인 결과에 머물지 않는다.


"그때 런칭했을 때, 전환율이 몇 프로였습니까?"

같은 단편적인 질문이 아니다.

"그 채널에서 객단가가 무너졌을 때,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 '병목'을 뚫어냈나요?"


그들은 내가 마주했던 거대한 위기와, 그걸 해결하기 위해 손에 피를 묻혀가며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문제 해결 과정' 그 자체에 열광했다.

생존이 걸린 필드에서는 우아한 이론이나 결과적인 숫자보다, 투박하더라도 어떻게든 문제를 돌파해 낸 '실전의 서사'가 천금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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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이와 직급을 뛰어넘는 '비즈니스의 격(태도)'


수십, 수백억 대의 자산을 일구고 거대한 회사를 이끄는 대표 타이틀을 가진 이들을 만나며 내가 가장 크게 감동했던 부분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따뜻한 존중'이었다.


나이가 한참 어리고 이제 막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나에게, 그들은 섣불리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실무자로서의 내 경험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대화의 격을 높여주었다.


"디렉터님의 그 뾰족한 기획력은 정말 대단하네요. 앞으로 어떤 판을 벌이실지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껍데기뿐인 명함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건네는 그 진심 어린 격려. 그것이 바로 진짜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비즈니스 매너'였다. 그들의 따뜻하고 묵직한 태도는 나로 하여금 '나도 저런 어른, 저런 기획자가 되어야겠다'며 스스로를 한 번 더 담금질하게 만들었다.





3. '안 된다'는 생각조차 아예 하지 않는 집요함


대기업의 엘리트들은 리스크 관리에 탁월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안 되는 이유 100가지를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하지만 내가 만난 진짜 사업가들은 달랐다. 안 되는 이유 100가지가 나오기도 전에, 애초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안 된다'라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리고 이 지점은 일에 미쳐있는 나의 마인드와 너무나도 완벽하게 일치했다.


나 역시 1,400억의 매출을 만드는 동안 단 한 번도 일을 하며 '이건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기획이 엎어지거나 실패하더라도 절망할 시간이 없다.

그저 '이번에 왜 안 터졌는지' 그 오답의 이유를 미친 듯이 빠르게 분석하고, 다음 턴에 기어이 성공시키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세울 뿐이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서늘한 집요함.

그것이 0에서 1을 만드는 사람들의 공통된 DNA였다.





마치며: 내 이름 석 자가 '명함'이 되는 곳으로


익숙했던 안전지대를 떠나,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덩그러니 놓인 지금.

나는 내 앞에 놓인 빈 명함을 내려다본다.

더 이상 거대한 회사의 로고 뒤에 숨어 내 실력을 착각하지 않기로 했다.

실전에서 만난 진짜 사업가들의 그 뜨거운 태도를 장착하고, 바닥부터 다시 부딪혀볼 작정이다.

기꺼이 타인을 존중하며, 단순한 결과가 아닌 치열한 문제 해결 과정에 집착하고, 안 된다는 생각 대신 되게 만들 전략만 집요하게 세우면서.

명함의 무게가 아니라, 온전히 나의 뾰족한 기획력과 실행력만으로. 내 이름 석 자가 이 치열한 필드에서 가장 강력한 명함이 되는 그날까지 말이다.





(Editor's Note) <디렉터의 오답노트> 다음 화에서는 야생의 최전선에서 팀을 0부터 빌딩하며 깨달은 채용의 비밀, "이력서가 완벽한 사람을 뽑지 않는 이유"를 공개합니다.



글. 브랜드 기획자 한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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