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연예인 1화

카메라 밖의 연기

by 코와

강남의 한 고급 고깃집. 불판 위에서 최고급 한우가 익어가는 냄새 사이로 민석의 걸쭉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야, 내가 딱 감방 문 열고 들어가니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조폭 막내 새끼가 건달이랍시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껄떡대더라고. 2리터짜리 생수병 두 개에 물 꽉 채워서 아령 대신 들고 근육 자랑을 막 해대는데, 아주 가관이었지."


"그래서? 쫄아서 화장실 옆에 찌그러져 있었냐?"


맞은편에 앉은 동창 하나가 낄낄거리며 묻자, 민석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명색이 펜트하우스 드나들던 놈인데 쫄겠냐? 구치소 방 안에서 운동하는 거 원래 규정상 금지거든. 바로 교도관 불러서 '여기 규정 위반하고 땀 냄새 풍기면서 위화감 조성하는 새끼 있다'고 호통을 딱 쳤지! 그리고 밖에서 영치금 팍팍 꽂히는 돈 존나 많은 '범털'인 척 좀 해줬더니, 그 새끼가 알아서 슬슬 기더라니까."


"와, 진짜 구치소에 별놈 다 있나 보네."


"말도 마라. 미결수들 방에는 온갖 잡범이 다 섞여 있어. 사기꾼부터 강간범, 뽕쟁이까지 별의별 미친놈들이 한 방에서 자는데, 그중에서 조폭 새끼들이 제일 뻔해. 겉으로는 문신 보여주면서 가오 잡는데, 결국 돈 앞에서는 제일 먼저 꼬리 내리고 쪼는 놈들이 그놈들이야. 돈 냄새 딱 맡으니까 형님, 형님 하면서 내 식판까지 지가 다 닦더라."


동창들이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이자, 민석이 소주잔을 탁 내려놓으며 상길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근데 솔직히 나 그 안에서 속으로는 진짜 쫄았거든? 근데 우리 상길이가 딱 나타나서 서초동 호랑이답게 법리로 다 조져버리고 날 끄집어내 준 거 아니냐. 진짜 내 인생의 은인이다. 상길이 이 새끼한테 다들 건배 한 번 해라!"


"오오! 서초동 호랑이, 강상길!"


동창들의 환호와 박수갈채에 상길은 쑥스러운 듯 헛기침하며 잔을 부딪쳤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 상길은 맞은편에 앉은 기태와 눈이 마주쳤다. 유명 예능 프로그램 VJ이자 촬영 장비 렌탈 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갈퀴로 긁어모은다는 기태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의 안색은 잿빛이었고, 억지로 웃음을 짓는 입가엔 수심이 가득했다.


잠시 후, 상길이 담배를 피우러 식당 밖 골목으로 나오자 누군가 황급히 뒤따라 나왔다. 기태였다.


"상길아... 불 좀 빌리자."


담배에 불을 붙인 기태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상길의 눈치를 살폈다.


"민석이 일, 네가 다 해결해 준 거라며. 상길아... 나도 진짜 남한테 말 못 할 사고를 좀 쳤는데, 상담 좀 할 수 있냐? 나 진짜 미쳐버릴 것 같다."


상길은 기태의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을 묵묵히 바라보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술자리는 기태의 짙은 한숨과 함께 찝찝하게 마무리되었다.


며칠 뒤, 서초동 강상길 법률 사무소.


소파에 마주 앉은 기태는 테이블 위에 놓인 차를 마시지도 못한 채 마른입을 축였다.


"내가 방송국 예능 촬영팀 이끌고 다니잖아. 몇 달 전에 케이블 예능 들어갔는데, 거기 게스트로 나온 신인 여배우랑 엮였어. 이름은 유라라고... 나이도 한참 어리고 이제 막 뜨려고 안달 난 애였는데."


상길이 메모장을 펼치며 턱짓으로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근데 걔가 나한테 엄청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거야. 내가 메인 카메라 감독에 예능국 PD들이랑 짬밥이 좀 되니까, 나 통해서 인맥 좀 뚫고 싶었겠지. 나도 솔직히 어리고 예쁜 애가 감독님, 감독님 하면서 앵기니까 정신을 못 차렸고... 그러다 단둘이 술을 마시게 됐는데, 내가 그 다음 주에 일본으로 촬영 간다고 하니까 자기도 일본 너무 가고 싶다면서 막 애교를 부리더라고."


"그래서, 비행기표 끊어줬냐?"


기태가 쥐어짜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 호텔이랑 비행기표 다 내주고 일본으로 불렀지. 그리고 거기서 첫날밤을 치렀어. 한국 돌아와서도 틈틈이 만나서 잠자리하고... 이쁘기도 이쁘지만 교태가 장난이 아니야. 어린애가 무슨 안마시술소 2차를 가도 걔처럼은 못할 거야. 그래서 완전히 빠져 있었지. 근데 얼마 전부터 이 미친년이 선을 넘더라고."


"이혼하라고 하던?"


기태가 화들짝 놀라며 상길을 쳐다보았다.


"어, 어떻게 알았어? 자기 사랑하지 않냐면서, 본처랑 정리하고 자기한테 오라는 거야. 근데 상길아,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내가 미쳤다고 이혼을 하냐? 애들 상처 주고 위자료 뜯기고... 게다가 그년 씀씀이 보니까 일본 갔을 때도 면세점에서 명품 백을 사달라고 하고, 지 돈으로도 수시로 명품을 긁어대는데, 같이 살면 내 재산 거덜 나는 건 시간문제겠더라고."


"그래서 거리두기를 시작했겠네."


"어. 카톡도 씹고 만나자는 것도 핑계 대면서 피했지. 그러다 두어 달 전에 내가 다큐멘터리 외주 촬영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갔어. 근데 그년이 귀신같이 알고 연락이 온 거야. 자기도 부산에 화보 촬영차 내려왔는데, 스케줄 꼬여서 서울 못 올라가게 됐다고. 딱 한 잔만 하자고 하는데, 나도 술 한잔했겠다 뭐 은근히 당기기도 하고..."


기태가 양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비벼댔다.


"내가 미친놈이지. 그 말에 또 속아서 해운대 호텔 방으로 불렀어. 룸서비스 시켜놓고 술 몇 잔 마시는데, 걔가 갑자기 얇은 가운만 입고 내 무릎 위로 올라타더라고. 향수 냄새에 살결이 닿으니까 나도 모르게 또 확 달아올라서..."


상길은 무표정하게 펜을 돌렸다. 기태의 목소리가 점차 기어들어 갔다.


"가운 벗기고, 내가 걔 가슴에 얼굴을 묻고 빠는데... 갑자기 걔 몸이 뻣뻣하게 굳는 거야. 신음 소리 하나 없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다보더니 딱 한 마디 하더라."


[이제 감독님은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네.]


"내가 당황해서 고개를 드니까, 겉옷을 스윽 걸쳐 입더니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라오겠다는 거야. 뭔가 기분이 찝찝하긴 했는데, 워낙 싸늘하게 굴어서 잡지도 못했어."


기태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근데 10분이 지나도 안 올라오는 거야.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나도 속이 타서 담배나 한 대 피울 겸 로비로 내려갔거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딱 로비로 나서는 순간..."


기태의 눈동자에 그날의 끔찍했던 공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건장한 남자 셋이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내 양팔을 꽉 붙잡는 거야. 경찰이더라."


[최기태 씨 맞으시죠?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강간 치상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상길의 펜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미란다 원칙. 함정에 빠진 사냥감의 숨통을 끊는 가장 확실한 신호였다.


"정신 차리고 보니까 내가 부산 해운대 경찰서 유치장 바닥에 앉아있더라. 상길아, 나 진짜 강간 안 했어. 그리고 몇 번씩 같이 잔 애를 무슨 강간이야? 그리고 걔가 먼저 톡했고, 난 그냥... 나 진짜 억울해 미치겠다."


상길은 천천히 안경을 치켜올리며,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기태와의 대화를 메모한 노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