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주말 오후, 상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보수적인 공기업 부장으로 있는 동수였다.
"어, 동수야. 웬일이냐?"
[상길아... 나 좀 살려주라. 나 진짜 좆됐다. 우리 와이프 알면 이혼은 기본이고, 회사에 소문나면 당장 파면이야. 밥줄까지 끊기게 생겼다고. 진짜 당장 한강 가야 할지도 몰라.]
수화기 너머 동수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고 있었다. 상길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세를 고쳐 앉아 메모장을 찾았다.
"숨부터 쉬고, 무슨 일인지 처음부터 똑바로 말해. 뭔 허튼짓했어?"
[그게... 한 달 전인가, 태국 마사지샵을 갔는데... 거기서 성행위 한 영상이 찍혔단다. 그걸 우리 와이프한테 보내겠다고...]
상길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전형적인 레퍼토리였다.
"마사지샵? 너 술 마시고 퇴폐업소 갔냐?"
[아니야! 맹세코 진짜 그냥 건전 마사지 간판 보고 들어갔어. 그날 팀원들이랑 회식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일찍 끝나서 집에 가긴 아쉽고 몸은 피곤해서 간 거란 말이야.]
"근데 거기서 뭘 어쨌길래 영상이 찍혀. 자세히 얘기해 봐."
동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한 달 전, 그 밤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밤 10시. 알코올 기운이 알딸딸하게 오른 동수는 붉은 네온사인이 깜빡이는 타이 마사지샵에 누워 있었다. 퀴퀴한 곰팡이랑 썩인 아로마 오일 냄새가 코를 찌르는 어두컴컴한 방이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들어온 태국 여성은 동수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깊게 파인 브이넥 유니폼 사이로 풍만한 가슴골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 30분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여자는 야무진 손끝으로 동수의 뭉친 등과 어깨를 시원하게 짓눌렀다. 긴장이 풀리며 노곤하게 잠이 쏟아질 무렵, 여자의 손길이 허리를 타고 골반 쪽으로 슬금슬금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타구니 안쪽의 림프선을 강하게 주무르던 여자의 손등이, 동수의 불알을 툭, 툭 하고 고의적으로 스치기 시작했다.
'어...? 여기 분명 건전 마사지라고 했는데.'
알코올로 달아올랐던 취기가 순식간에 다른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여자가 서툰 한국어로 "오빠, 뒤로 돌아"라고 속삭였다.
천장을 보고 눕자 묘한 긴장감이 방 안을 감돌았다. 여자는 침대 위로 올라와 동수의 다리를 마사지하며 엎드렸다. 그녀가 몸을 숙일 때마다 얇은 유니폼 밖으로 쏟아질 듯한 가슴이 동수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허벅지 안쪽을 주무르던 여자의 손가락이 이따금씩 동수의 성기를 살쩍살쩍 건드렸다.
이미 동수의 하반신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수건을 텐트처럼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여자가 상체를 바짝 숙여 동수의 가슴을 마사지할 때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동수의 턱끝을 간지럽혔고, 그녀의 묵직한 가슴이 동수의 흉팍에 뭉근하게 짓눌렸다. 여자의 샴푸 냄새와 더운 숨결이 코끝에 닿자 동수는 이성을 잃었다.
동수가 홀린 듯이 손을 뻗어 여자의 가슴을 살짝 쥐었다. 여자는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동수의 손등을 자신의 손으로 지그시 내리누르며 눈웃음을 쳤다.
"오빠. 육만 원 손, 십만 원 입."
어설픈 한국어였지만 뜻은 너무도 명확했다. 쾌락의 늪에 빠진 동수는 이미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그는 황급히 바지 주머니를 뒤져 꼬깃꼬깃한 5만 원권 두 장을 꺼내 여자에게 쥐여주며 현금 결제를 했다. 나중에 성매매 꼬투리 잡힐까봐 카드나 송금은 피할려고 비상금을 털었다.
여자는 돈을 챙기자마자 능숙하게 수건을 걷어냈다.
"하아... 읏..."
따뜻하고 축축한 감촉이 동수의 성기를 집어삼켰다. 싸구려 마사지 베드 위에서, 동수는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으며 맹렬한 쾌락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입으로 받고 끝났어. 진짜 그게 다야.]
"지랄 염병을 했네. 그래서? 어떻게 연락이 온 건데?"
동수의 한숨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어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더라. 자기가 그 마사지샵 사장인데, 요즘 외국인 불법 체류 단속 심해서 먹고살기도 힘든데, 가게에 성추행당했다는 아가씨들 불만이 많아서 천장에 몰카를 달아놨대. 근데 거기에 내 영상이 딱 찍혀있다는 거야. 입으로 받는 거부터 10만 원 주는 것까지 다.]
"그래서 돈 내놓으라던?"
[어. 영상 지우는 값으로 당장 돈 안 보내면 우리 와이프한테 보내겠대. 내 이름이랑 와이프 전화번호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더라.]
"돈은 보냈어?"
[어제 너무 무섭고 속 시끄러워서... 일단 100만 원 보내고 퉁치기로 했거든? 근데 이 미친놈이 오늘 아침에 또 전화 와서 300만 원을 더 내놓으라는 거야. 이거 끝도 없을 것 같아서 나 진짜 미치겠어. 상길아, 나 경찰서 가야 하냐? 경찰에 신고하면 이 새끼들 잡을 수 있어?]
상길이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차갑게 대답했다.
"경찰서 가면 성매매특별법 위반으로 너부터 조사받아야지. 그리고 걔들 대포폰에 대포통장 써서 못 잡아."
[그럼 나 어떡해! 진짜 와이프한테 영상 가면 이혼당하는 건 물론이고, 회사에서 성추문으로 징계 먹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얼마 전에도 다른 팀 과장 하나가 비슷한 일로 걸려서 얄짤없이 파면당했단 말이야!]
"동수야. 지금부터 내 말 똑바로 들어. 당장 그 번호 차단하고 10원 한 푼도 더 보내지 마."
[미쳤냐? 차단했다가 빡쳐서 진짜 우리 와이프 폰으로 영상 보내면 어떡하려고!]
"그 새끼가 또 다른 번호로 연락 오면 이렇게 말해. 변호사 선임했으니까 이제부터 모든 연락은 내 변호사 강상길한테 하라고. 번호 넘겨."
[아니, 상길아. 네가 막아주는 건 고마운데, 진짜로 영상이 와이프 카톡으로 전송되면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증거가 빼도 박도 못하게 찍혀있는데!]
동수의 찌질한 울부짖음에 상길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동수야. 넌 오늘 저녁에 나한테 오마카세에 비싼 술을 한잔 사야겠다."
[어? 술?]
"오늘 밤에 나랑 술 거하게 먹고 집에 들어가. 그리고 와이프한테 아주 심각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상길의 서늘하면서도 완벽한 전략이 동수의 귓가에 꽂히기 시작했다.
"오늘 상길이랑 술 마시면서 들었는데, 요즘 'AI 딥페이크 보이스피싱'이 엄청 유행한대. 멀쩡한 남자들 얼굴이나 SNS 사진을 AI로 합성해서 가짜 성관계 영상을 만든 다음에, 그걸로 와이프나 가족들한테 돈 뜯어내는 사기 조직이 활개 치고 있다고. 상길이가 이거에 속아서 이혼 소송까지 간 부부 사건 하는데 머리가 아프다고. 세상 진짜 무섭지 않냐? 우리도 혹시 모르는 번호로 이상한 영상 오면 절대 열어보지 말고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 영상에 바이러스 같은거 같이 심을수도 있다고 하니까.라고 제수씨 한테 말해"
수화기 너머로 동수의 턱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와... 씨발. 너 진짜 천재냐?]
"사기꾼 새끼들이 진짜 영상을 보낼지 안 보낼지는 몰라. 하지만 네 와이프 머릿속에 '이런 종류의 영상은 AI 합성 사기다'라는 예방주사를 미리 강력하게 놔두는 거야. 설령 영상이 오더라도 네 와이프는 '아, 남편이 말했던 그 사기꾼 새끼들이구나' 하고 욕부터 박겠지."
[상길아...! 진짜 고맙다. 내가 오늘 텐프로든 어디든 다 쏜다 진짜!]
"지랄. 회나 사. 그리고 이 새끼야."
상길의 목소리가 단번에 매섭게 가라앉았다.
"잔소리 길게 안 한다. 아예 이런 일을 만들지를 마. 내가 예전에 경찰에서 생질계(주석1) 할 때, 태국이나 베트남 애들 불법 마사지 합숙소 털러 가본 적 있거든? 방구석 하나에 십여 명이 짐짝처럼 같이 살아. 화장실도 하나밖에 없어서 제대로 씻지도 못해. 걔들 룸에 들어올 때 향수 냄새 엄청 찐하지? 그거 다 며칠씩 안 씻어서 나는 냄새 덮으려고 들이붓는 거야. 네가 그 꼬라지를 직접 눈으로 한 번이라도 봤으면 걔들하고 그런 짓 하고 싶은 마음 싹 사라졌을 거다. 가장 완벽한 방어는 이딴 지저분한 이슈 자체를 안 만드는 거야. 알았어?"
[어... 명심할게. 진짜 다신 안 그럴게. 어떻게 룸도 예약해둬?]
"이제 농담이 나오지? 미친놈, 저녁에 보자."
전화를 끊은 상길은 혀를 끌며 헛웃음을 지었다. 한순간의 알량한 쾌락에 이성과 지갑, 그리고 가정의 평화까지 모두 털릴 뻔한 친구의 멍청함. 세상엔 참 다양한 종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고,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주석1: 생질계(생활질서계) - 일선 경찰서 소속 부서로, 풍속업소(불법 마사지, 성매매 등), 도박, 기초질서 위반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범죄의 단속 및 예방 업무를 전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