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사건 ; 고무신 3화

사냥감이 된 군인

by 코와

휴가에서 복귀한 태성은 생활관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저녁 점호 전, 태성의 관물대 주변으로 동기들과 김민재 일병과 일병 동기 내무실 인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야, 김민재. 네가 알려준 방 진짜 대박이더라. 걔 인스타 사진 봤지? 실물은 그거보다 백 배는 더 쩔어."


태성은 침상에 거만하게 짝다리를 짚고 서서 무용담을 풀기 시작했다. 22년 묵은 모태솔로의 수줍음은 온데간데없고, 허세와 뻥이 잔뜩 들어간 수컷의 허풍이 펼쳐졌다.


"방문 딱 닫히자마자, 내가 그냥 겉옷 벗어던지고 침대로 확 눕혀버렸지. 걔가 내 넓은 어깨 딱 보더니 벌써 눈이 풀리더라니까?"


"와... 김 상병님 진짜 상남자십니다. 그래서요? 바로 돌진하셨습니까?"


후임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묻자, 태성이 코웃음을 쳤다.


"말해 뭐 하냐. 내가 하도 거칠게 밀어붙이니까, 걔가 오빠 제발 살살해달라고 아주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 내 딴엔 힘 조절한다고 한 건데, 너무 크다고 막 그러는데 그냥 했지. 아침에 다리 풀려서 못 걷겠다는 거 겨우 달래주고 나왔다. 하아, 진짜 내 짐승 같은 체력이 문제야, 문제."


"미쳤다 진짜... 저도 다음 휴가 때 무조건 그 방 들어갑니다. 김 상병님 진짜 부럽지 말입니다!"


태성은 후임들의 선망 어린 눈빛을 즐기며 침을 튀겼다. 모태솔로 딱지를 뗐다는, 그것도 엄청난 미녀를 내가 완벽하게 리드해서 압도했다는 우월감이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날 저녁. 개인정비 시간에 핸드폰을 켠 태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유진에게서 온 장문의 카톡 때문이었다.


[오빠, 나 그날 이후로 아래쪽이 너무 아파서 오늘 산부인과 다녀왔어. 나 분명히 아프다고 했는데 오빠가 멈추지도 않고 왜 그랬어? ㅠㅠ.]


태성은 너무 미안했다. 아프다고 할 때 멈췄어야 했나? 하지만 첫 경험의 쾌락에 취했던 태성은 별다른 생각 없이 다급하게 키패드를 두드렸다.


[유진아 진짜 미안해.]

[난 네가 좋아하는 줄 알고]

[내가 너무 흥분해서 조절을 못 했어.]

[많이 아파? 진짜 미안하다.]

[제발 화 풀어 ㅠㅠ]


메시지 옆의 1이 금세 사라졌다.


[유진아?]

[오빠가 진짜 잘못했어 ㅠㅠ 연락 좀 받아봐]


태성은 애가 타서 계속해서 톡을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유진은 그날 이후로 카톡을 차단하고 인스타그램 계정마저 비공개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한달 뒤. 태성은 중대장실로 호출되었다. 중대장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야 이새끼야. 방금 강원지방경찰청에서 너한테 출석요구서가 송달됐어. 아휴 강간 치상 혐의라는데, 너 휴가 나가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어?"


"네? 강간이요? 저, 절대 아닙니다! 서로 합의하고..."


하지만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성범죄 사건은 군사경찰(헌병대)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곧바로 민간 경찰청에서 수사하기 때문이었다. (주석1)


며칠 뒤, 부대에서 공가(公假) 처리를 받고 떨리는 걸음으로 강원지방경찰청 조사실에 앉은 태성.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했다는 증거가 명백합니다."


수사관이 서류철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태성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유진이 제출한 카톡 캡처 화면이었다. 교묘하게도 태성이 당황해서 연달아 보낸 사과 메시지까지만 딱 잘려 있었다.


"본인도 여기서 '미안하다'라고 인정했잖습니까?"


태성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깟 사과 카톡 한 줄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완벽한 자백 증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며칠 뒤, 서초동 강상길 법률 사무소.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인 최 변호사가 서류를 들고 상길의 방으로 들어왔다.


"변호사님. 군인 성범죄 사건 하나 들어왔습니다. 오픈 카톡으로 만난 민간인 여성을 휴가 나와서 강간했다는 혐의인데, 피의자는 합의라고 주장하지만 카톡으로 본인이 사과한 내역, 모텔 들어간 영상등이 있어서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습니다."


보고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어소, 이 변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이거 얼마 전에 제가 합의금 3천만 원 주고 끝냈던 사건이랑 수법이 너무 비슷한데요? 아, 그때도 피의자가 갓 휴가 나온 일병이었던…."


상길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피해자 이름이 뭡니까?"


"최유진입니다."


"맞네요! 최유진. 인스타에 필라테스 사진 도배해 놓은 그 여자."


상길은 즉시 이 변호사가 맡았던 과거 사건 기록을 가져오게 해 꼼꼼히 검토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박 사무장님, 강원경찰청으로 같이 좀 가보시죠."


강원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상길은 담당 수사관과 마주 앉았다.


"수사관님. 내 의뢰인 사건 피해자, 최유진 씨 말입니다. 킥스(KICS) 접속해서 범죄 경력이나 피해 접수 내역 한 번만 돌려봐 주시죠." (주석2)


"변호사님. 피해자 신상 조회를 저희가 함부로..."


"수사관님. 이거 기획 고소 냄새가 너무 짙습니다. (주석3) 제 어소 변호사가 얼마 전에 합의금 3천만 원 쥐여주고 끝낸 사건이랑 패턴이 똑같아요. 수법도, 타깃도 현역 군인으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수사관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타자를 쳤다. 잠시 후, 화면을 들여다보던 수사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뭐지? 지난 2년 동안 최유진 이름으로 접수된 강간 고소 건만 무려 7건입니다. 피고소인은 전부 현역 군인이고요."


상길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어이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수사관님. 강간은 친고죄가 아니니 원칙대로라면 기소 송치되어 재판까지 가야 정상이죠. 하지만 저 7건 중에 끝까지 재판 간 사건, 장담하건대 단 한 건도 없을 겁니다. 중간에 수천만 원씩 합의금 뜯어내고 '사실은 강제성이 없었다'며 진술 번복해서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로 털어줬겠죠."


상길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군대라는 고립된 곳에 갇힌 20대 초반 애들이 수천만 원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국 자식 구속될까 봐 벌벌 떠는 부모들 협박해서 피 같은 노후 자금 뜯어낸 겁니다. 이건 어르신들 상대로 사기 치는 보이스피싱보다 죄질이 훨씬 악랄한 몸피싱입니다."


상길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정중하지만 뼈 있는 어조로 수사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수사관님, 상황이 이렇다면 제 의뢰인 사건은 단순 성범죄가 아니라 상습적인 기획 고소의 일부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박 사무장도 옆에서 거들었다.

"수사관님 저희 의뢰인에 대한 무리한 조사는 잠시 보류하고, 이 최유진이라는 여성의 상습 무고 및 공갈 혐의에 대해 추가 조사 좀 해봅시다. 이거 무리하게 했다가 예전에 경기 00경찰서 처럼 오히려 독이 될수 있어요. 남자만 몰아 붙이다가 서장님까지 사과한거 기억하죠?"

경찰출신 답게 살짝 겁을 주며 수사관을 압박해 주었다.

"특히 여기 강원청 관할에 군부대가 얼마나 많습니까. 애먼 청춘들 피 빠는 이런 악질적인 범죄, 수사관님께서 확실하게 막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상길이가 마무리까지 지었다.


수사관은 모니터 화면에 뜬 7건의 고소 기록과 상길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결심한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윗선에 보고를 해서 저 피해자라는 여성부터 제대로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네요."


돌아오는 차안에서 박사무장이 혀를 끌끌차며 씁쓸한 듯 이야기 했다.


"아무리 꽃뱀이라도 자기들 지켜주러 군대간 애를 등처 먹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변호사님...."


감수 : 경찰간부 출신 김판수 변호사


주석1: 군사법원법 개정 - 2022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인의 '성폭력 범죄' 등은 군사경찰에서 1차 조사를 하지 않고 처음부터 민간 수사기관(경찰청)이 수사를 관할한다. 소속 부대로 출석요구서가 송달되면, 피의자인 군인은 부대에서 공가(公假) 처리를 받고 민간 경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게 된다.

주석2: 형사사법포털(KICS) - 경찰, 검찰, 법원 등이 형사사건의 정보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수사관은 이를 통해 특정 인물의 과거 범죄 이력, 수사 경력, 고소 및 고발 내역 등을 종합적으로 조회할 수 있다.

주석3: 기획 고소 - 금전적인 합의금을 노리고 고의적으로 상황을 조작하거나 유도하여 상대방을 고소하는 행위. 주로 성범죄에 취약한 직업군(공무원, 군인 등)을 타깃으로 하여, 카카오톡 사과 메시지 등을 증거로 수집한 뒤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수법이 흔히 사용된다.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