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힘 : 배신처럼 터진 웃음

by 숨나

장례식장은 기묘하고도 잔인한 극장이었다.
한쪽에서는 아빠가 하얀 국화 잎을 흩뿌리며 통곡의 연극을 벌이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친척들이 화투패를 내던지며 왁자지껄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백 앞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소음을 채워 넣고 있었다.
나를 위로하겠다며 찾아온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는 그 소음의 정점이었다.
짙은 눈화장에 붉게 칠한 입술, 껌을 짝짝 소리 내어 씹으며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은
이 비극적인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 같았다.

아이고, 아이고.
하얀 국화 속에서 터져 나오는 아빠의 곡소리.


철퍽, 철퍽.
화투패가 뒤섞이는 소리.


짝, 짝.
껌 씹는 소리.


쨍그랑.
비어 가는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

엄마의 영정 사진 앞에서 저토록 태연하게 웃고 떠드는 그들이 지독하게 꼴 보기 싫었다.
나는 결심했다.
이 무례한 소음들 속에서 나는 결코 웃지 않으리라. 이 비극의 무게를 단 1그램도 덜어내지 않고 오롯이 견디는 것만이 내가 엄마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예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입술을 짓이기며 슬픔의 요새 안에 나를 가두었다.


하지만 장례 마지막 날, 사흘간의 긴 소란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귀신처럼 앉아 있는 나를 보며 고모가 툭, 시답잖은 농담을 던졌다.


“야, 숨나야. 경해도 산 사름은 살아사주. 느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는 거 다 들렴쪄이. 너네 어렸을 때 어떵헌 줄 알암시냐. 배고프면 잘도 하영도 먹었져이.”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너 배에서 꼬르륵 소리 다 들려. 너희 어렸을 때 어떤 줄 알아? 배고프면 정말 많이 먹었어.)


그 어처구니없는 타이밍에, 내 안에서 팽팽히 당겨져 있던 슬픔의 줄이 ‘툭’ 하고 끊어졌다.
엄마가 차가운 관 속에 누워 있는데, 고모의 그 투박한 농담 한마디에 나는 그만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려버렸다.
죽을 것처럼 아팠던 엄마의 죽음도 무색하게, 내 비루한 육체는 배가 고파 꼬르륵거렸고, 또 그 농담에 반응했다.


그렇게 삶의 리듬은 다시 내 안에서 뛰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가 빈소의 공기를 가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렇게 배신 같은 웃음을 터뜨려서라도 기어이 살아남도록 설계된 잔인한 생명체라는 것을.
그 웃음은 슬픔에 대한 배신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짓누르던 숨 막힘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해 준 아주 작은 숨구멍이었다.
고모는 내 웃음소리를 듣고는 더 크게 웃으며 내 등을 세차게 두드렸다.


“야이, 잘도 웃엄저이. 경 해사주. 산 사름은 경이라도 행 살아사주.살암시민 살아진다.”
(얘, 잘 웃네. 그렇게 해야지. 산 사람은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야지. 살다 보면, 살아진다.)

장례식장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구석 한 모퉁이에 아빠가 흩뿌려 놓은 하얀 국화 잎사귀 몇 개가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 틈새로, 삶이라는 끈질기고 고집스러운 리듬이 다시 들려왔다.
나는 그 비릿한 생의 감각을 느끼며, 비로소 아주 깊은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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