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힘 : 나 또한 연극의 한 부분이었음을

by 숨나

장례식장에는 자기 술 마실 돈은 있어도 부조할 돈은 모자란, 가난한 대학생 친구들이 계속 들이닥쳤다.
친척들은 식비를 줄이라며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가 밥을 먹이라고 했다.


‘내 친구들은 오빠의 존재를 모르는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위로 심장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얘들아, 너네 여기 잠시만 있어 봐.”


친구들을 현관 앞에 세워두고 나는 황급히 오빠의 방으로 달려갔다.
오빠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방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장판 위에는 침을 뱉어 손으로 비비며 놀고 있었고, 벽지는 오빠가 늘 기대앉는 자리만 가로로 길고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나는 간절함을 담아 오빠에게 절대 방에서 나오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세 살 지능의 오빠가 알아들을 리 없었지만, 그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었다.


친구들을 내 방으로 들이고 밥상을 차려왔다.
철없는 스무 살 남학생들은 눈치도 없이 내 책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 이거 일본 노래네. 오~ 엑스재팬!”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J-POP 테이프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친구들이 그 순간만큼은 원수처럼 느껴졌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오빠가 방에서 나와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뒷골이 주르륵 식었다.
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말했다.
“얘들아, 반찬 더 가져올게!”


방을 빠져나와 거실을 기웃거리는 오빠에게 먹을 것을 쥐여주고, 다시 방으로 밀어 넣었다.
“오빠, 거기 있어. 제발.”
내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장애인 오빠를 친구들에게 들킬 뻔했다.
‘오빠 없음’이라는 나의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엄마를 잃은 딸이라는 슬픔도 잊은 채 나는 필사적으로 연극을 했다.


방으로 돌아오니 친구들은 여전히 테이프를 뒤지며 웃고 있었다.
“야, 이거 다 일본 노래네. 너 일본 갔었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 엄마가 일본 갔다 와서 사 온 거야.”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밥상 위에 울려 퍼질 것만 같았다.


나 또한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운 연극의 한 부분이었음을,

오늘에서야 고백한다.
장례식장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아빠는 하얀 국화로,
나는 거짓 웃음으로
각자의 역할을 연기했다.
그 연극 속에서 오빠는 여전히
소리 없는 유령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유령으로 남겨두었던 오빠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오빠, 미안해.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어서 정말 미안해.”


그때 차마 잡지 못했던 오빠의 손을
이제는 꿈에서라도 꼭 잡고
함께 세상을 걷고 싶다.


미안해, 오빠.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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