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의 사흘간 내가 끝까지 놓지 않은 고집이 있었다.
바로 콘택트렌즈였다. 안경을 쓰면 눈이 단추 구멍처럼 작아 보이는 게 싫어 평소에도 렌즈를 꼈지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하얀 삼베 소복을 입고 영정 사진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친구들이 온다는 말에 화장실로 달려가 렌즈를 꼈다.
‘엄마가 죽었는데, 이 와중에 예뻐 보이고 싶니.’
내 안의 비아냥거림을 뒤로한 채, 손가락은 익숙하게 투명한 조각을 눈동자 위로 밀어 넣었다.
퉁퉁 부은 눈에 렌즈를 넣자 눈이 시리고 뻑뻑해졌다.
눈물이 흐르는 게 엄마가 보고 싶어서인지, 각막이 아파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친구들이 나를 안고 울 때, 나는 그들의 어깨 너머로 생각했다.
‘지금 내 눈이 너무 충혈돼서 무서워 보이면 어떡하지.’
상주라는 이름을 달고서도 못생겨 보이기는 싫었던 마음. 비겁하고도 가여운 그 고집을 엄마의 죽음조차 지워내지 못했다.
지독하게 뻑뻑한 렌즈 덕분에 나는 사흘 내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효녀라 우는 줄 알았겠지만, 사실 내 눈 속에서는 삶과 죽음의 슬픔보다 더 따갑고 선명한 무언가가 나를 계속 찌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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