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힘 : 사랑과 영혼, 그리고 엇박자의 노래방

1997년 정월 대보름 바로 전날의 기록

by 숨나

그날 밤, 우리 자매들은 거실에 모여 TV에서 해주는 〈사랑과 영혼〉을 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죽은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의 곁을 애틋하게 맴돌고 있었지만, 우리 집에는 지독한 정적만 흘렀다.

연락도 없이 외박한 엄마를 두고 우리는 낄낄거리며 불효막심한 농담을 던졌다.

“야, 엄마 혹시 그 종교 사람하고 바람나서 도망간 거 아냐?”
“에이,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아빠도 일본에서 딴 집 살림 차렸다는데.”

엄마에게 오빠는 살아 있는 형벌이었다. 현대 의학이 포기한 자리를 사이비 종교가 대신 차지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여러 종교 단체를 전전했고, 종교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주머니에 주민등록증 한 장 없이, 염주 하나만 덜렁 넣은 채 엄마가 길 위에서 '신원미상의 시체'가 되었다는 것을.

엄마는 오빠를 구하러 낙원을 찾아가다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멈춰 섰다. 영화 속 ‘사랑과 영혼’ 대신, 엄마에게 붙은 이름은 ‘신원미상’이었다.

다음 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갔다. 노래방의 미러볼이 돌아가고, 숨이 찰 정도로 노래를 불렀다.


“말하자면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야, 하지만 말할 수 없단 얘기야~”


그때 허리춤의 삐삐가 진동했다.

[82… 82… (빨리)].

음성 메시지 속 언니의 목소리는 노래방 복도보다 더 비현실적이었다.

“엄마 죽었대. 중앙병원으로 빨리 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차가운 밤공기가 뺨을 때렸다.

나는 길가에서 미친 사람처럼 손을 흔들었다. 택시 안에서 꺽꺽대는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때렸다.

화려한 옷차림 그대로 도착한 곳은 영안실.

엄마의 유품은 지갑도 이름표도 없이, 염주 하나뿐이었다.

엄마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증명하지 못한 채 길 위에서 사라졌다.

영안실 입구에 서서야,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깨달았다. 엄마가 사라진 순간에 내가 부르고 있던 노래 가사와, 엄마의 행방을 두고 웃던 내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삶은 늘 이토록 잔인한 엇박자를 낸다.

가장 가벼운 순간에, 가장 무거운 이별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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