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떠나 꽃을 피우다

by 박지숙

내 생의 가장 눈부신 꼭대기에서

나는 나의 이름을 지탱하던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소중한 것 중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어

결국 나를 비워 가족이라는 기둥을 붙잡았습니다.


자리를 내어준 뒤 찾아온 시린 공기

인정받던 나의 쓸모가 안개처럼 흩어질 때

그 허전한 고뇌는 몇 해를 두고

나의 발목을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무너질 듯 위태로운 우울의 파도와

나를 집어삼키려던 불안의 그림자 그

시커먼 심연에 빠지지 않으려

나는 다른 곳에 미친 듯이 나를 던졌습니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쓰고, 배우던 그 지독한 집중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만약 그 불꽃마저 없었더라면

나는 이미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나는 압니다.

나의 강함과 나의 뜨거운 열정은

결코 특정한 '자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내가 머물던 의자가 사라졌어도

내 안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기에

나는 이제 다른 마당에서, 다른 이름으로

나의 생을 더 아름답게 태우려 합니다.


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영토를 넓힌 것임을

나는 나의 새로운 몰입으로 증명하렵니다.

그곳이 어디든, 내가 닿는 모든 곳이

나의 가장 찬란한 자리가 될 테니까요.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20화돌아보지 않는 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