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50년째 반복되는 아케이드의 저주

왜 우리 상권은 자생하지 못하는가?

by 김영기

1. 이름만 바뀐 채 반복된 정책의 도돌이표

대한민국의 상권 정책은 지난 반세기 동안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변모해 왔다. 1970년대의 전통시장 육성부터 시작해 시장 정비, 도시재생, 상권 르네상스, 그리고 최근의 자율상권에 이르기까지, 정책의 명칭은 시대의 유행을 충실히 반영했다. 하지만 겉포장지를 한 꺼풀 벗겨내면 그 알맹이는 놀라울 정도로 동일하다. 정부가 주도하고, 예산을 쏟아부어, 물리적 시설을 바꾼다는 세 축의 관성이 50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적 타성은 상권의 진정한 자생력을 키우기보다는, 공공의 지원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구조적 무력감을 누적시켜 왔다.


2. 깨끗해진 시장, 그러나 채워지지 않은 내실

2000년대 초반, 전국의 전통시장은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단행했다. 비를 막아주는 아케이드가 설치되고, 주차장이 넓어졌으며, 보행로가 정비되었다. 외형적으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쾌적해졌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해 보자. 시설이 좋아졌다고 해서 상권의 매출이 비약적으로 늘었는가? 혹은 상권의 미래를 고민하는 전문 경영 시스템이 갖춰졌는가?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간은 새로워졌지만, 그 공간을 채울 콘텐츠와 운영 전략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상권을 하나의 경영 단위로 인식하지 않고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 바라본 결과다. 하드웨어(시설)에 집중된 투자는 시간이 흐르면 감가상각을 피할 수 없으며, 이를 관리할 소프트웨어(운영 체계)가 부재한 상권은 결국 더 빠른 속도로 노후화의 늪에 빠지게 된다.


3. 회계연도라는 창살에 갇힌 상권의 미래

2010년대 이후 등장한 도시재생과 골목상권 정책은 공동체와 스토리텔링이라는 소프트웨어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상권 활성화 사업처럼 5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가 도입되며 정책의 호흡이 길어지는 듯한 변화도 감지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 역시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추진력을 잃고 만다.

상권 활성화는 최소 3년에서 5년 이상의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다. 비록 다년도 사업으로 선정되어 전체 예산 규모가 확정되더라도, 실제 집행 과정은 여전히 1년 단위의 경직된 회계 시스템 속에 갇혀 있다. 매년 정해진 비목에 맞추어 예산을 집행해야 하고, 연차별로 설정된 가시적인 성과 지표를 채우기 위해 정교한 전략보다는 당해 연도 집행률과 정량적 실적에 매몰되는 현상이 반복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5년이라는 긴 시간은 유기적인 흐름을 잃고, 파편화된 1년의 나열로 전락하기 일쑤다.

결국 장기 프로젝트라는 이름표는 무색해지고, 정책은 다시금 일회성 사업의 연속이나 형식적인 실적 쌓기로 흐르기 쉽다. 사업이 종료되는 순간 활기가 빠르게 식어버리는 현상은, 긴 사업 기간이라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상권이 스스로 재원을 조달하고 운영할 수 있는 자립 엔진을 만드는 데 행정적 유연성이 뒷받침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회계연도라는 창살 안에서 정해진 예산 항목을 소진하는 데 급급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상권의 진정한 경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4. 이제는 보호가 아닌 경영의 시대로

최근 도입된 자율상권구역은 민간의 주도성을 강조하며 변화의 서막을 알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 실질적인 재원 구조와 운영 주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이름의 정부 의존형 상권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50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상권은 보호해야 할 사회복지의 영역이 아니라, 치열하게 관리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경제 자산이라는 점이다.

공공이 주도하고 민간이 따르는 구조에서, 민간이 책임지고 공공이 보완하는 구조로.

단기 프로젝트 중심에서 장기적 자산 관리 체계로.

단순 지원 대상에서 독립적인 경영 주체로.

이제는 정책의 명칭을 바꾸는 미봉책에서 벗어나, 상권의 운영 엔진 자체를 교체하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과연 정부의 수혈 없이 스스로 숨 쉬는 상권을 목격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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