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범인 잡는 게 쉬웠어요" 실전 독박 육아 24시
(부제: 수갑 대신 젖병을 쥔 '베테랑' 경찰관의 뼈저린 반성문)
"애들 보는 게 뭐 그렇게 힘들겠어?
밖에서 밤새우며 범인도 잡았는데."
제복을 벗고 앞치마를 두르기 전까지,
나는 솔직히 오만했다. 청소년 상담사 시절부터 투잡, 쓰리잡을 뛰며 몸이 부서져라 일해봤고,
경찰이 된 후에는 24시간 당직을 서며
온갖 취객과 범죄자들을 상대해 온 나름
'N잡러 베테랑' 아니었던가.
3살 딸과 1살 아들이,
고작 이 두 쪼꼬미를 돌보는 일쯤은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나의 그 알량한 자신감이 산산조각
나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범인 잡는 게 백 번, 아니 천 번은 더 쉬웠다.
경찰서에서의 24시간 당직 근무가 아무리 고되다 한들, 사건이 터지지 않는 '대기 시간'이라는 게 존재한다.
의자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실 찰나의 틈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육아'라는 근무지에는 대기 시간이란 없다. 출근은 있으나 퇴근은 존재하지 않는 무간지옥이었다.
게다가 범인들은 최소한 '말'이라도 통했다. 아무리 난동을 부리는 만취자라도 달래거나, 보호자를 불러 인계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3살, 1살 아이들과의 대치는 협상가가 인질범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 최악의 인질극과 같았다. 무엇이 불편한지, 왜 싫은지,
도대체 뭘 원하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울음소리가 스테레오로 울려 퍼질 때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한 손으로 둘째의 분유를 먹이고 있으면, 첫째가 쪼르르 달려와 질투심에 내 등에 올라타고 놀아달라며 떼를 썼다. 내 몸이 두 개로 쪼개졌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정한 멘탈 붕괴는 따로 있었다.
내 육아휴직 역사상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른바 '진흙 똥파티 사건'이다.
원래 두 아이는 분리 수면을 원칙으로 했지만, 그날따라 낮잠 시간이 되자 첫째가
"오늘은 동생이랑 같이 잘래"라며 고집을 피웠다.
나는 속으로
'웬일이냐, 한방에 둘을 재울 수 있다니!' 쾌재를 부르며 두 아이를 나란히 눕혔다.
얼마 뒤, 집안에 찾아온 평화로운 정적을 만끽하며 무심코 홈캠 화면을 들여다본 순간이었다.
화면 속 침대 위가 뭔가 이상했다.
하얀 침구 위에 정체불명의 갈색 무늬들이 어지럽게 수놓아져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가,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기저귀를 떼고 배변 훈련을 하던 첫째가 잠결에 바지에 실수를 한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는 그 축축하고 냄새나는 배설물을 마치 찰흙 놀이라도 하듯 손으로 이불 곳곳에 치덕치덕 바르며 '똥파티'를 벌여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지옥 같은 현장 한가운데서,
둘째는 똥이 잔뜩 묻은 이불 커버에 얼굴을 맞댄 채 천사처럼 곤히 자고 있었다.
어떤 참혹한 사건 현장에서도 이토록 아찔했던 적은 없었다. 이성은 마비됐고 헛웃음만 나왔다. 도저히 수습할 엄두조차 나지 않아,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 이불 커버와 패드를 통째로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했다.
이유 없이 아이가 악을 쓰며 우는 '원더윅스' 기간이 찾아오면 지옥문은 활짝 열린다.
둘째가 30분, 길게는 2시간을 내리 울어대면, 옆에 있던 첫째마저 불안감에 전염되어 덩달아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솔직히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도망치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아빠 역시 사람이기에 극한의 피로 앞에서는 짜증과 분노가 솟구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그 전쟁통 한가운데서 나만의 생존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이성이 작동하면 감정이 요동치고,
그 화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표출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텅 빈 바위라고 세뇌하며,
악을 쓰는 아이를 가만히 안고 거실을 수백 바퀴씩 돌았다.
그리고 그 끝없는 원을 그리며 걷던 어느 새벽, 나는 불현듯 과거 중앙경찰학교 교육생 시절의 밤을 떠올렸다.
수화기 너머로 갓난쟁이 첫째를 안고 엉엉 울던 아내의 목소리. 나조차도 이렇게 미쳐버릴 것 같이 힘든 이 끔찍한 고독과 육체적 고통을, 출산으로 뼈마디가 다 벌어진 아내는 어떻게 홀로 견뎌냈던 걸까.
남편이라는 사람은 중앙경찰학교에 6개월이나 갇혀 있고, 온종일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핏덩이와 덩그러니 남겨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걸었을 아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멈추지 않는 밤이면 아내는 내가 했던 것처럼 스스로를 돌이라 세뇌하며, 소리 없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켰을까.
실전 육아의 쓴맛을 보고 나서야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진짜 영웅은 밖에서 수갑을 차고 범인을 잡던 내가 아니라, 이 작은 집 안에서 무너져가는 멘탈을 부여잡고
내 아이들의 우주를 묵묵히 지켜낸 나의 아내, 나의 '원더우먼'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경찰 제복에는 수많은 훈장과 계급장이 달린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강인함의 상징이라 부른다.
하지만 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의 배설물을 치우며 배운 진짜 강인함은 다른 곳에 있었다.
경찰로서 배운 제압은 거친 힘으로 상대를 꺾는 것이었지만, 아빠가 되어 배운 가장 위대한 제압은 솟구치는 내 안의 감정을 꾹 누르고 연약한 생명 앞에서 기꺼이 둥글고 따뜻한 '돌'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오늘도 나는 범죄 현장 대신 어지럽혀진 거실을 치우고, 무전기 대신 젖병을 흔든다.
수갑을 채울 때 느꼈던 짜릿함은 없지만, 분유를 먹다 내 품에서 스르르 잠든 아이의 평온한 숨소리는 그 어떤 무공훈장보다 눈부시게 빛난다.
홀로 이 무거운 훈장의 무게를 견뎌냈던
아내를 향해, 마음속으로 뼈저리게 깊은 존경의 거수경례를 올린다.
이어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려, 품속에 잠든 아이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