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보수적인 경찰 조직에서 '아빠 육아휴직'을 던지기까지
(부제: 도망이 아니라,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한 가장의 '비상탈출'이었다)
"장경장, 진짜 쉴 거야?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야.
나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야."
경찰이라는 조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수직적이다.
제복이 주는 무거운 책임감만큼이나,
남초 집단 특유의 경직된 계급 문화가 뼛속까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이제 갓 입직한 지 1년 반 남짓 된 새파란 직원이, 그것도 한창 사건을 쳐내야 할 남성 경찰관이 육아휴직을 입에 올렸을 때 돌아온 시선은 서늘함을 넘어 따가웠다.
"육아휴직 들어가면,
본서에 네 자리는 사라진다고 보면 돼."
복직 후 지구대나 파출소로 밀려날 것이라는 암묵적인 경고,
그동안 쌓아온 세평(조직 내 평판)이 무너질 것이라는 압박,
그리고 승진은 당분간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뼈아픈 현실.
이 모든 것들이 내 앞을 거대한
벽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벽 앞에서도 나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흔들릴 여유조차 없었다.
내게는 갓 태어난 지 4개월 된 둘째와, 아직 손길이 많이 필요한 3살 첫째, 독박 육아로 하루하루 메말라가는 아내,
그리고 무엇보다 '부서져 가는 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여성청소년과 수사팀(여청수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업무의 강도도 상상을 초월했지만,
나를 가장 갉아먹었던 것은 조직 내에서의 철저한 고립감이었다.
팀 내의 보이지 않는 벽과 냉대 속에서 나는 점점 투명 인간이 되어갔다.
회식 자리에서도, 티타임에서도 철저히 겉돌았다. 모니터 불빛에 비친 내 얼굴은 생기를 잃은 지 오래였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으며, 우울감은 절정에 달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발걸음은 늪을 향해 걷는 것처럼 무거웠다.
그리고 그 지독한 스트레스의 화살은, 안타깝게도 가장 약한 곳을 향해 방향을 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나의 가족이었다.
여청수사팀에서 아동학대, 그중에서도 '정서적 방임' 사건을 다루다 보면 가슴 아픈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를 방치한 부모들 모두가 처음부터 악마였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 역시 자식을 사랑하지만, 먹고사는 일이 너무 고단해서,
혹은 자신의 마음속 짙은 우울과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서 아이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온기와 시선을 거두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된 몸으로 거실 바닥에 쓰러지듯 누운 어느 날이었다. 칭얼거리는 4개월 된 둘째를 안고 밤새 선잠을 자는 아내와,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을 3살 첫째가 장난감을 내밀며 다가왔을 때,
나는 억지웃음조차 지어줄 힘이 없었다.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나도 위험하다. 밖에서 받은 조직의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방임하는 무책임한 아빠가 될지도 모른다.'
이건 단순히 힘들어서 치는 '도망'이 아니었다. 침몰해 가는 배에서 내 가족을 온전히 살려내기 위한 가장의 절박한 '비상탈출'이었다.
휴직을 결심하고 과장님실 문을 두드리던 날, 쿵쾅거릴 줄 알았던 심장은 오히려 잔잔했다.
무너져가는 내 가정을 지킬 수만 있다면,
조직 내의 나쁜 평판이나 승진 누락 따위는 얼마든지 기꺼이 치를 수 있는
값싼 입장료에 불과했다.
물론 팀의 반응은 마지막까지 차가웠다.
휴직에 들어가는 전날까지도 쉴 새 없이 사건을 배당하며 업무로 압박했고,
심지어 휴직에 들어간 초기에도 사건 관련 전화가 수시로 울려대며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 요란하고 날 선 전화벨 소리도,
내 품에 안겨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숨소리 앞에서는 그저 힘없는 소음에 불과했다.
세상은 종종 무언가를 끝까지 악물고 버텨내는 것만을 '용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육아휴직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배운 진짜 용기는 달랐다.
나를 갉아먹고 내 가족의 영혼을 메마르게 하는 곳이라면, 타인의 따가운 시선과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히 브레이크를 밟을 줄 아는 것. 그것이 한 가정의 가장이 지녀야 할 진짜 묵직한 용기였다.
경찰서의 내 책상은 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잃어버린 낡은 철제 책상 대신,
매일 아침 사랑하는 아내, 아이들과 마주 앉아 따뜻한 눈을 맞출 수 있는 우리 집 식탁을 온전히 지켜냈으니 말이다.
세상을 구하는 훌륭한 경찰관이 되는 것도 좋지만, 내 아이들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멋진 제복이 다 무슨 소용일까.
수갑을 차고 범인을 제압하던 손으로, 나는 이제 서툴게 젖병을 흔들고 아이의 작은 손을 꽉 맞잡는다. 화려한 무궁화 계급장보다, 잠들기 전 내 목을 끌어안으며 "아빠 좋아"라고 속삭이는 아이의 체온이 내겐 그 어떤 표창장보다 눈부시다.
그렇게 나는 기꺼이 승진을 미루고, 내 가족의 영원한 '전속 안전 요원'으로 남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