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N잡러 경찰관, 과감히 인생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다
부제 : 가족을 지키려 앞만 보고 달렸던 아빠의 '뒷모습'에서 마주 보는 '앞모습'으로
"작가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뛰며 그렇게 악착같이 사셨는데, 갑자기 육아휴직은 어떻게 결심하신 건가요?"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잊지 못할 '그날의 사진관' 이야기를 꺼낸다.
당시 나는 여성청소년과 수사팀(여청수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부서 특성상 퇴근 시간은 늘 기약이 없었다.
야간 근무는 저녁 6시 출근해 다음 날 아침 9시 퇴근이 원칙이었지만,
현실은 오후 3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후 3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24시간 당직을 서는 날, 현행범을 체포하고 구속영장까지 치게 되면
퇴근은 기약 없이 뒤로 밀렸다.
그 무렵, 둘째의 100일 기념사진 촬영이 있었다. 전날 밤샘 당직을 섰기에 오후 4시쯤이면 당연히 퇴근할 줄 알고 예약해 둔 일정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사건이 터졌고,
나는 서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아이의 100일 촬영마저 펑크 낼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동료들의 배려로 잠시 짬을 내어 숨을 헐떡이며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땀범벅이 된 채로 허둥지둥 가족사진 한 장을 찍고, 나는 다시 아내와 100일 된 핏덩이를 남겨둔 채 범인을 잡으러 경찰서로 복귀해야 했다.
경찰서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하고 있는 걸까?'
머리로는 늘 '가족을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내 가족의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순간에 나는 늘 부재중이었다.
나의 일상은 항상 새벽 5시 40분에 시작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세상모르고 곤히 잠든 새벽, 고요한 거실을 빠져나와 출근을 했다.
사건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에너지를 모두 방전하고 집에 돌아오면,
남은 힘을 쥐어짜 내 아이들 밥을 먹이고 씻기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끝났다.
야근과 당직이 겹칠 때면 며칠씩이나 아이들이 깨어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날에도 현장에서 에너지를 다 써버린 아빠는 거실 바닥에 쓰러지듯 대자로 누워있기 일쑤였다.
누운 채로 아이들을 발에 올려 '비행기'를 태워주거나, 바닥에 엎드려 내 등에 아이들을 태우고 '인간 말'이 되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놀이였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늘 무거웠다. '체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밖에서 같이 뛰어놀며 더 신나게 해줬을 텐데….'
남의 집 가정폭력과 비행 청소년들의 아픔에는 누구보다 깊게 공감하고 에너지를 쏟는 경찰관이었지만, 정작 내 아이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 내가 안아주지 못하는 사이 훌쩍훌쩍 커버리고 있었다.
어느 날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나는 내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 인생에 처음으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기로 한 것이다.
가장 두려웠던 건 역시 아내의 반응이었다. 외벌이 가장으로서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육아휴직을 꺼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 조심스러운 폭탄선언에 아내는 나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오빠 그동안 업무적으로든 가정적으로든 너무 무리하면서 노력한 거 내가 다 알아. 이참에 오빠도 좀 푹 쉬어. 너무 고마워."
아내의 그 한마디에 맺혀있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승진을 향해 달리고 남들처럼 번듯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아내,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함께하는 시간'을 지켜내는 것이 내 인생에서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온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과감히 제복을 벗고 앞치마를 둘렀다.
출근 지문 인식기 대신 젖병 소독기를 돌리고, 수갑 대신 국자를 쥐며 시작된 어느 경찰관 아빠의 우당탕탕 육아휴직 생존기.
이 이야기는 거창한 육아 철학서가 아니다.
그저 범인 잡는 것보다 애 달래는 게 천 배는 더 힘들다는 걸 온몸으로 깨달은 '살림 쪼렙' 남편의 반성문이자, 잃어버린 가족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 훌쩍 떠났던 제주 한달살이를 통해 비로소 '진짜 아빠'로 거듭난 한 남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흔히 아빠의 등은 넓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거친 풍파를 막아주기 위해 밖에서 더 단단해지고 강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원했던 건, 거대한 방패막이가 된 아빠의 넓은 뒷모습이 아니라, 자신과 눈을 맞추며 함께 웃어주는 따뜻한 앞모습이었다.
오늘도 일터와 가정 사이에서 무거운 어깨를 짊어지고 고군분투하는 이 세상 모든 아빠들에게, 그리고 나의 빈자리를 묵묵히 채워주며 내 결정을 누구보다 응원해 준 나의 원더우먼 와이프에게 이 기록을 바친다.
나는 이제 수갑 찬 손 대신 아이의 작은 손을 꽉 잡고, 범죄 현장 대신 우리 집 거실을 지키려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임무,
'진짜 아빠'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