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화 남의 집 아이는 챙기면서, 정작 내 아이는?
(부제: 비행 청소년의 변명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아이의 목소리는 외면했던 날들)
학교전담경찰관(SPO)으로 근무하며 내가 가장 자부심을 가졌던 무기는 바로 '적극적 청취'였다.
학교폭력 사건을 다루다 보면, 가해 학생이라 할지라도 철저히 자기방어적이고 이기적인 변명만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속으로는 뻔히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아이들의 엇나간 마음을 달래고
훗날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진심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남의 집 위기 청소년들에게 나는
한없이 너그럽고 인내심 넘치는,
꽤 괜찮은 어른이자 다정한 경찰관이었다.
하지만 경찰서 조사실에서 환하게 빛나던
나의 그 다정함과 인내심은,
야속하게도 우리 집 현관문을 채 넘지 못했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아침부터 아빠가 오기만을 목빠지게 기다렸을 첫째 딸이었다.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
장난감 이야기 등 조잘조잘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채 집에 돌아온 나는, 아이의 맑은 눈망울을 피하며 핑계를 찾기 바빴다.
"딸, 아빠 지금 엄마랑 얘기하고 있잖아."
"아빠 손, 발만 닦고 갈게,
아빠 뭐 좀 하고 이따가 놀아줄게."
경찰서에서는 수십 명의 아이들을 상대하면서도 끄떡없었는데,
집에만 오면 아내의 말도 들어야 하고,
첫째의 투정도 받아줘야 하고,
둘째도 안아줘야 하는 그 다중의 상황이 버겁게만 느껴졌다.
내 몸이 세 개였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변명 속에서 내뱉은 차가운 거절.
그럴 때면 딸은 입술을 삐죽이며 터벅터벅 자신의 방으로 서운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축 처진 작은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미안했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했던
날들이 수두룩했다.
나의 얄팍한 밑천이 완전히 드러난 건,
어느 날 첫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빠, 방에 들어가서 누워서 좀 쉬어."
퇴근 후 소파에 기대어 힘겹게 눈을 껌벅이는 나를 보며, 딸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등을 떠밀며 한 말이었다.
평소 아내가 지친 나를 배려하며 하던 말을, 아이가 그대로 배워 나에게 건넨 것이다.
아빠가 얼마나 지쳐 보였으면,
놀아달라 조르지도 못하고 혼자 속을 삭이며
저런 어른스러운 말을 할까.
도망치듯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지만,
거실 너머로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노는 소리, 투닥거리며 우는 소리가 방문을 넘어올 때면 지독한 자책감이 밀려왔다.
'가족이랑 시간 보내려고 그동안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고, 오늘도 발버둥 치며 일찍 퇴근했는데…
나는 왜 지금 혼자 방에 누워 이 소리만 듣고 있는 걸까. 내 한계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되나.'
어둠 속에 누워 나는 뼈저리게 반성했다.
회사와 가정의 에너지 밸런스를 맞추는 것,
그리고 내 아이의 눈을 맞출 수 있는 든든한 체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으로서 갖춰야 할
진짜 스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도망치듯 누워있던 안방 문을 열고 나와, 온전히 아이들과 24시간을 부대끼는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우리 집에는 작은 기적 같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아이들의 우주가 내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매일 밤 끌어안고 자는 애착 인형들의 이름이 '장젤리', '선리윤', '뽀야', '허수'라는 구체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
부끄럼쟁이인 줄 알았던 아이가 음악만 나오면 숨겨둔 춤 실력과 노래 실력을 뽐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둘째는 또 어떤가. 길을 걷다 강아지만 보면 "멈머!" 하고 눈을 반짝인다는 것, 잠들 때는 꼭 누군가의 살결에 작은 발을 맞대어야만 안심하고 스르르 잠든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웠다.
특히 휴직 기간 동안 전적으로 돌보았던 둘째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입을 떼기 무섭게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찾았고,
울음이 터질 때면 내 품으로 파고들며 "아빠아~ 아빠아~" 하고 서럽게 나를 불렀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내 품에서 꼬물거리는 아이의 온기를 안고 있을 때면, 지난날 안방에 갇혀 느끼던 지독한 자책감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벅찬 행복이 차올랐다.
첫째 딸과 단둘이 떠났던 여행은 우리 부녀 사이의 견고한 비밀 기지가 되었다.
"아빠! 우리 예전에 둘이 데이트 갔었지~ 그때 이것도 보고 이것도 먹었지?"
문득문득 여행의 추억을 꺼내며 환하게 웃는 딸의 얼굴을 볼 때면,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진짜 성적표를 받은 것만 같아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남의 집 아이들의 상처는 기가 막히게 찾아내고 달래주면서도, 정작 내 아이들의 마음이 자라는 소리에는 귀를 닫았던 어리석은 아빠.
나는 이제 밖에서 배운 '적극적 청취'의 기술을 오롯이 내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거창한 대화 기법이나 상담 심리학의 이론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쪼그려 앉아 아이와 시선을 맞추고,
작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장젤리와 선리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수사는,
퇴근 후 내 아이의 맑은 눈동자 속에 담긴 우주를 온전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무전기 대신 아이의 애착 인형을 들고, 거실이라는 가장 중요한 현장으로 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