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갑 대신 앞치마를 두른, 어느 경찰관 아빠의 기록

​제 5화 아내에게 '엄마' 대신 '빛나'라는 이름을 돌려주던 날

by 장경장

​제 5화 아내에게 '엄마' 대신 '빛나'라는 이름을 돌려주던 날


​(부제: 2박 3일의 완벽한 휴가, 그리고 남겨진 아빠의 눈물겨운 독박 육아 르포)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매일 아내와 얼굴을 맞대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빛나던 나의 아내가, 언제부터인가 온전히

쉴 틈도 없이 바스라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퇴근 후 잠시 육아를 돕는 것과,

24시간 아이들과 엉켜 자신의 이름조차 잊은 채 '엄마'로만 살아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당신, 이번 주말에 혼자 다녀와. 2박 3일로 경찰수련원 예약해 뒀어."


​나의 폭탄선언에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2박 3일이나? 혼자서?!"


처음엔 믿지 못하더니,

이내 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가서 뭐 하면서 쉬어야 소문이 잘 날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평소 내가 아이들을 능숙하게 돌본다는 걸 알기에 아내는 큰 걱정 없이, 남겨질 우리 셋이 먹을 식량만 냉장고에 든든히 채워둔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예쁘게 단장하고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호기롭게 외쳤다.


'걱정 말고 푹 쉬고 와! 이 까짓거,

내가 완벽하게 해낸다.'


​휴가 1일 차. 집에서의 일상은 평화로웠다.

'이 정도면 할 만한데?'라는 나의 오만함은

2일 차 아침,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며 마침 아내가 부재중이었던 친한 동료 형님과 의기투합해, 아빠들끼리 아이 둘씩을 데리고 1박 2일 눈썰매장 여행을 떠난 것이 화근이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우리의 계획은 완벽했다. 낮에는 아이들과 눈밭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쌓고, 밤에는 일찍 아이들을 재운 뒤 아빠들끼리 오붓하게 술 한잔을 기울이며 육아의 노고를 달래는 그림.


​하지만 현실은 재난 영화에 가까웠다.

아빠 혼자 아이 둘을 케어하며 눈썰매장에 간다는 건 지옥문을 여는 행위였다.


자동 리프트 따위는 없었다. 튜브 썰매 두 개를 양손에 쥐고 가파른 눈길을 헉헉대며 직접 끌고 올라가야 했다.


3살 둘째는 무섭다며 튜브에 안 타겠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썼고, 간신히 둘째를 달래놓으면 5살 첫째가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못 뜨겠다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칭얼거렸다.

영하의 날씨에도 내 등줄기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동료 형님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형님… 다음엔 애들이 중학생쯤 되거나, 아니면 무조건 와이프들 모시고 오시죠…."


​그럼에도 아주 작고 소박한 위안은 있었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아이 넷을 데리고 밥을 먹이는 아빠 둘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신기한 듯 물었다.


"엄마들은 다 어디 가고 아빠들끼리 애들을 데리고 왔어요?"


"아, 아내들은 푹 쉬라고 휴가 보냈습니다."


우리의 대답에 식당 사람들은

"요즘 아빠들은 참 대단하네, 최고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온몸의 뼈마디가 쑤셨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깨가 으쓱해지며 밀려오는 뿌듯함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알량한 뿌듯함의 대가는 뒤늦게, 그리고 너무도 혹독하게 찾아왔다.
눈썰매장에서 모든 체력과 면역력을 하얗게 불태우고 돌아온 지 이틀 뒤,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하더니 결국 내 몸은 백기를 들고 말았다. 잠복기를 거친 피로가 한꺼번에 터지며 B형 독감에 걸려 3일을 내리 앓아누운 것이다.


​몸이 하나인데 아이 둘을 돌본다는 건 초인적인 영역이었다. 머리로는 너무도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지만, 몸이 부서질 듯 아프니 입에서는 예쁜 말이 나가질 않았다.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돌아서서 후회하기를 수십 번.
사무치게 아내의 빈자리를 느꼈다.


'여보야, 제발 빨리 와….'


​드디어 2박 3일의 휴가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내의 얼굴은 몰라보게 환하고 생기가 돌았다. 그 밝아진 얼굴을 보며 남편으로서 멋지게 "잘 쉬었어?"라고 안부를 건네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는 5살 아이처럼 서러운 투정이 먼저 터져 나왔다.


눈썰매장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혼자 애 둘을 보는 게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봇물 터지듯 쏟아내는 나를 보며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투정 부리듯 그간 힘들었던 이야기를 조잘조잘 늘어놓는 나를 따뜻하게 다독여 주었다.


​아내에게 투정을 부리다, 나는 문득 아찔한 깨달음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고작 이 며칠 애들 봤다고 힘들어 했는데, 아내는 내가 출근하고 없는 그 길고 고독한 시간 동안 매일 혼자서 이 묵직한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육아는 단순히 체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끝없는 희생 속에서도 기꺼이 미소를 잃지 않는, 한없이 투명하고 단단한 '멘탈'의 영역이었다.

​경찰관으로서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를 상대하고 밤샘 당직을 서보았대도,

내 아이를 지켜내는 엄마의 숭고한 정신력 앞에서는 감히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다.


이 뼈저린 독박 육아의 끝에서, 나는 나를 키워낸 나의 어머니와, 지금 내 아이들의 우주를 묵묵히 지탱하고 있는 나의 아내,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위대한 어머니들을 향해 가장 깊은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아내에게 2박 3일의 휴가를 선물하며 나는 내가 대단한 남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24시간, 365일 자신의 청춘과 이름을 기꺼이 반납한 채 우리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선물해 주고 있던 것은 바로 아내였다.

​오늘도 아내는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훔치며 아이들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 미소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나는 앞으로 몇 번이고 기꺼이 눈밭에서 썰매를 끌고 독감을 앓으며 아내에게 '빛나'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되찾아주는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수갑을 찬 것이 아니라,


나의 원더우먼인 그녀의 손을 잡은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