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수갑 대신 국자를 들다: '살림 쪼렙' 남편의 생존기
(부제: 범죄 단서보다 찾기 힘든 냉장고 식재료, 주방이라는 낯선 현장에 파견되다)
"오빠, 살림은 아이템 발이고,
가사는 디테일이야. 알았지?"
제복을 벗고 본격적인 '전업주부'의 삶을 시작하던 날,
아내가 나에게 건넨 비장한 훈시였다.
경찰 업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N잡러로서 복잡한 사건이나 돌발 상황은 척척 해결해 왔지만, 주방과 세탁실이라는 낯선 현장에 파견된 나는 그저 미역국 하나 끓이는 데도 휴대폰으로 레시피를 열 번 넘게 검색해야 하는 '살림 쪼렙(초보)'에 불과했다.
나의 오만은 주방에서부터 산산조각 났다.
요리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아내와 달리,
내 손을 거친 식재료들은 도무지 제맛을 내지 못했다. 내가 야심 차게 끓인 국은 늘 싱겁거나 짰고, 볶음밥은 질거나 탔다.
결국 '요리는 아내가, 먹이는 건 내가'라는 아주 합리적인(?) 업무 분담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먹이는 일'조차 만만치 않은 가사 노동의 연장이었다. 두 아이의 입을 열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신종 마약(?)'을 제조하듯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여야 했다.
나만의 필살기는 '마법의 동그라미 밥'이었다. 김가루와 밥, 그리고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둔 장조림이나 멸치볶음을 황금 비율로 섞어 아이들 입에 쏙 들어가게 작고 동그랗게 빚어내는 것이다.
단순히 밥을 내미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고도의 협상 기술이 필요했다. 5살 첫째에게는 밥을 줄 때마다 스토리를 입혔다.
"딸아, 이 동그라미는 유치원 친구 누구게? 자, 다음 건 선생님이야. 아~"
그러면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친구 이름을 맞추며 홀린 듯 밥을 받아먹었다. 동물 소리를 좋아하는 3살 둘째에게는 "어흥! 호랑이다! 멈머! 강아지가 밥 먹네!"라며 온갖 동물 흉내와 재롱을 떨어야만 간신히 입이 열렸다. 하루 세 번, 우리 집 밥상 앞은 흉악범과의 대치 현장보다 더 팽팽한 협상과 1인극이 오가는 치열한 작전 구역이었다.
주방을 벗어나면,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굴레의 늪'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건 '거실 장난감 지뢰밭'이었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거나 밤에 잠든 틈을 타, 나는 발바닥에 레고가 찍히는 고통을 감내하며 거실에 널브러진 블록, 인형, 책들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하지만 평화는 딱 10분뿐이었다. 아이들이 깨어나 거실로 달려 나오는 순간, 그야말로 '뻥' 안 치고 단 10분이면 거실은 다시 원상복귀, 아니 폭격을 정통으로 맞은 재난 현장으로 변해버렸다.
빨래 역시 무한 증식하는 괴물 같았다. 5살, 3살 아이 둘에 어른 둘, 그리고 끝없이 나오는 수건까지. 빨래를 색깔별로, 용도별로 나누다 보면 하루에 네 번 넘게 세탁기를 돌리는 날도 허다했다.
특히 첫째가 배변 훈련을 시작하면서 이불과 베개 커버를 손빨래해야 하는 날들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진정한 빌런은 건조기에서 탄생했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따뜻한 빨래를 건조기에서 꺼내 거실에 두면, 아이들은 "우와, 따뜻해!"라며 환호성을 지르고는 내가 애써 개어놓은 빨래 산 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몸을 비비고, 어지르고,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내 오전의 노동력은 속절없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살림에는 결코 '퇴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뼛속 깊이 시리게 와닿던 순간이었다.
가장 치욕스러웠던(?) 순간은 아내의 '등짝 스매싱'을 부르는 나의 심각한 '디테일 부족'이었다.
사건 현장의 미세한 단서 하나 놓치지 않던 매의 눈이, 집안일이라는 일상 앞에서는 왜 그리도 침침해지는지. 빨래를 분리하기 귀찮아 어른 옷과 아이 옷을 같이 돌렸다가 아이 피부에 트러블이 생겨 엄청난 꾸중을 들었다.
장난감을 정리한답시고 커다란 박스에 한꺼번에 때려 넣었다가
"애들이 장난감을 도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라며 혼이 났다.
샤워하고 나온 아이에게 메리야스를 안 입히고 잠옷만 덜렁 입혀서 혼나고, 외출할 때 목에 스카프를 안 둘러줘서 혼났다.
나갈 때 챙겨야 할 아이들 물, 손수건, 여벌 옷, 비상용 장난감까지… 이 수많은 '디테일'들을 나는 매번 "에이,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넘겼고, 그 대가는 어김없이 아내의 싸늘한 시선과 폭풍 잔소리로 돌아왔다.
복잡한 서류는 척척 정리하면서, 정작 내 가족의 하루를 지키는 그 작고 섬세한 디테일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나 자신. 흔히 세상은 가사 노동을 '집에서 그냥 쉬는 일'이라고 쉽게 치부한다.
하지만 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젖병을 흔들며 온몸으로 부딪혀 배운 가사 노동의 진짜 얼굴은 전혀 달랐다.
그것은 밖으로 티도 나지 않지만, 멈추는 순간 가족의 평온한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가장 고독하고도 숭고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었다.
육아휴직을 하던 그 시절, 나는 걷어도 걷어도 줄어들지 않는 빨래 산 앞에서 기꺼이 무릎을 꿇었고 아이들의 입에 밥을 밀어 넣기 위해 매일 주방이라는 현장으로 묵묵히 출동했다.
수갑을 채울 때 느꼈던 짜릿한 성취감은 없었지만, 서랍 속에 어설프게 갠 아이들의 옷가지가 채워질 때의 안도감,
그리고 내 품에서 배부르게 잠든 아이의 평온한 숨소리는 그 어떤 훈장보다 눈부시고 값졌다.
비록 그 시간 동안 경찰 조직의 인정과 승진은 잠시 내려놓아야 했지만,
나는 기꺼이 우리 집이라는 든든한 방패를 지키는 전속 '안전 요원'이자 가족을 위해 국자를 든 '살림 쪼렙' 주부로 훌쩍 성장해 있었다.
그때 흘린 짠내 나는 땀방울과 뼈저린 반성이 있었기에, 비로소 지금의 내가 아이들과 더 단단하게 눈을 맞추는 진짜 아빠가 될 수 있었음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