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평가의 '유연함'에 대하여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지 어느덧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강산은 두 번 가까이 변했고, 교실의 풍경도 칠판에서 태블릿으로 옮겨왔지요. 하지만 최근 우리가 마주한 'AI'라는 파도는 이전의 변화와는 차원이 다른 듯합니다. 특히 평가의 영역에서 우리는 거대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단 5초 만에 완벽한 논설문을 뱉어내는 시대에, 과연 우리는 아이들의 무엇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결과라는 '점'이 아닌, 사유라는 '선'을 평가하기
지금까지의 평가는 결과물이라는 '점'을 찍는 행위였습니다. 기말고사 점수, 완성된 독후감, 제출된 포트폴리오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제 지식의 총량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어떤 그릇으로 무엇을 퍼 올릴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이제 아이들이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점'보다는, 그 맛을 찾아가기 위해 재료를 고르고 다듬던 '정성의 시간'이라는 '선'에 주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유하자면, 식탁 위에 예쁘게 차려진 '완성된 요리'에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니라, 재료를 다듬으며 도마 위를 경쾌하게 두드리던 '칼질 소리'와 적절한 맛을 찾기 위해 수없이 불길을 조절했던 '인내의 과정'을 기록하는 셈입니다. 레시피대로 찍어낸 밀키트(AI)는 누구나 차릴 수 있겠지만, 간을 보며 미세하게 양념을 더하던 그 고유한 손맛의 서사는 결코 복제될 수 없는 그 아이만의 고유한 맛이기 때문입니다.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정성'과 '고민'이 곧 교육의 본질이 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데이터의 감옥'과 '실수할 권리'
하지만 플랫폼이 아이의 모든 '로그'를 낱낱이 기록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조금 서늘하게 만듭니다. 성장의 본질은 '실패'와 '방황'인데, 모든 시행착오가 데이터로 박제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아마 오답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리고, 시스템이 좋아할 법한 정답만 골라내는 눈치꾼으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은 기록하되, 그 기록이 아이의 미래를 가로막는 낙인이 되지 않도록 유연하게 설계되어야 마땅합니다.
또한 알고리즘의 편향성 역시 경계해야 할 지점입니다. AI가 "너는 수학에 소질이 없으니 예체능만 들어"라고 권고하는 순간, 그것은 맞춤형 교육이 아니라 아이의 잠재력을 가두는 '데이터의 감옥'이 됩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우리를 확증편향의 늪(Echo Chamber)에 빠뜨리듯, 교육 플랫폼도 아이를 익숙한 영역에만 고립시킬 수 있습니다. 이때 교사는 데이터가 추천하지 않는 '낯선 길'로 아이를 등 떠미는, 조금은 불친절하지만 다정한 가이드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디지털 파놉티콘을 넘어, 교사의 '직관'으로
학습 과정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교실은 자칫 '디지털 파놉티콘'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거실에 CCTV를 설치해 놓고 "너를 위해 기록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부모의 사랑은 아이에게 감시로 느껴질 뿐입니다. 데이터의 소유권은 철저히 학생 본인에게 있어야 하며, 자신의 어떤 모습을 세상에 공개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 주도적 데이터 주권' 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AI는 아이의 점수를 소수점 단위로 쪼개 분석하지만, 교실 현장의 교사는 아이의 '한숨 소리' 뒤에 숨은 진심을 듣습니다.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유연해지되, 그 유연함이 만든 빈틈은 결국 교사의 '정서적 지지'라는 온기로 채워져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챗GPT에게 "이 문제 좀 풀어줘"라고 시킬 때, 우리는 그 아이에게 "GPT가 준 답의 허점을 찾아봐"라고 딴지를 걸 줄 아는 용기를 가르쳐야 합니다. 정답만 맞히는 기계는 이미 당근마켓에 내놓아도 안 팔릴 만큼 세상에 널려 있으니까요. 우리는 기계를 잘 부리는 '기사'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기계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 '엉뚱하고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인간이라는 '오리지널'을 지켜내야 합니다.
저는 오늘도 아이들의 데이터에 기록되지 않은 '여백'을 보려 노력합니다. 가끔 수업 시간에 멍하니 창밖을 보던 그 5분간의 '데이터 부재'가, 사실은 아이의 내면에서 가장 거대한 창조적 폭발이 일어나던 시간이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비트(Bit)와 바이트(Byte)가 결코 닿지 않는 그 여백의 공간에서, 진짜 한 인간의 성장이 숨을 쉽니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그 여백을 '오류'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가능성'으로 남겨두는 유연함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작가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제가 꿈꾸는 미래의 교실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